먼저 주셨던 사랑, 돌려주다 왔어요.
지음(知音)의 친구가 추천해 주었다. 친구는 추천과 함께 책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친구의 책을 몇 달간 빌렸다. 책은 작년에 받았지만, 여러 책들에 우선순위를 빼앗기다가 4월이 되어서야 책을 모두 읽었다. 책 제목만 보면 먼저 손이 갈 것만 같은 책이었지만 쉽사리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너 뭐 하다 왔니?"라는 하나님의 물음에 대한 답변을 글로 남긴 책이기에, 책을 읽으며 계속 나에게도 '그럼,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의 의문이 계속 들었다.
대학생 시절, 선교단체 예수전도단(YWAM)에 계속 적(籍)을 두며 보고 들었던 내용들이 책장에도 여전히 남겨져있었다. 처음 갔던 요르단 단기 선교의 이야기부터, 중국 동북삼성의 이야기까지 여전히 온 지구상에서 역사하고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앞에서, '그럼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의문은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2018년부터 교사가 되었으니, 벌써 7년째 교편(敎鞭)을 잡고 있다. 20학년도부터 담임을 맡았으니, 벌써 다섯 번째 학급 담임을 맡고 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다섯 번째 첫 학교'였던 나는 "저 초임 교사에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어느덧 우리 학교에서도 3년 차 교사가 되었다. 이제 '초임 교사', '저경력 교사'라는 칭호를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22년까지 매 해 학교를 옮기다, 3년째 한 학교에 머무르면서 이사 없는(?) 겨울방학을 보내며 첫 마음이 점차 잊혀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올해는 고3을 맡아 삶의 우선순위가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덧 선생님을 하기로 결정했던 옛 시절의 내 모습이 흐릿해져 갔다. 기독교 학교만 찾아 지원서를 썼던,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싶다.
교사의 열심과 노력이 그저 '수학(수업)을 향한 열정'으로 치환되지 않을 수 있는 곳.
학생들을 향한 작은 모든 행동들이 "직업 윤리로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닌 곳.
"왜 저 선생님은 저렇게까지 하실까?"라는 짧은 질문이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곳.
사랑과 행동의 이유가 "먼저 받았던 예수님의 사랑에 반응하기 위해서"가 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기독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너 뭐 하다 왔니?"라고 나에게 물으실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가끔은, 아니 자주 헤메던 적도 많았지만요...
그래도. 그래도 저는, 사랑하다 왔어요.
받은 사랑 돌려주는 삶을 살다 왔어요."
열 여덟, 처음 교사가 되기로 결정했던 그날, 다짐한 한 가지가 있었다. 더 이상 학생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고, 학생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그날이 온다면, 그게 교직 2년 차, 29살이더라도 교직을 가능한 한 빨리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교사는 그 어떤 직업보다 안정성이 높지만, 그것은 내 기준일 뿐이다.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는 교사 대신, 더 젊고 유능한 선생님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학생들을 위하여 더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한 나이의 기준으로 31살을 삼았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 책 『프루스트 클럽』을 읽은 해의 김혜진 작가님의 연세가 31살이셨다. 지금은 40대 중반이 되셨겠다. 1년, 혹은 몇 년 주기로 계속 청소년 소설을 쓰신다. 쓰실 때마다 구입해서 책을 읽는다. 재작년, 작년에 출간한 책을 읽어보니, 여전히 김혜진 작가님은 학생들의 마음을 잘 살피신다. 김혜진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변한다. '33살까지는 교사를 해도, 학생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37살까지도 가능할 것 같아. 40세에도 그럴 수 있겠어....'
교직은 20여개의 소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이 감동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20개가 넘는 우주에게 받은 사랑을 나누는 일은 더 영광스럽고, 또 감사한 일이다. 매일,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함이 쌓인다.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학교에 오래 남아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사랑을 나누는 일을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겨난다. 교사로서의 정년 퇴임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전히 지금도 같은 마음이지만, '1년만 더 해보자.'라는 마음이 매해 조금씩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