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서평

어른 : 생각한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것을 말로 옮길 수 있는 사람.

꿈잣는이 2024. 8. 2. 22:12

 

김종원. (2023).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마인드셋.

 
책 『너에게 들려주는 단단한 말』, 『너에게 들려주는 예쁜 말』, 『너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말』, 그리고 『부모의 어휘력』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이 저자의 책은 위의 책만 남아있었고, 그렇게 빌려 읽었다. 책 제목만 보면 무언가 '어른'에 대한 또 다른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책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5장에서는 '안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안목.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으니 그 설명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 ≒ 면안.'라고 쓰여있다. 그럼 통찰은 무엇이지? 라는 생각으로 통찰에 대해 찾아보니, 통찰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이라고 쓰여있다. 비슷해보이는 표현이지만, 특정한 사물을 기반으로 그 주변까지 치밀하게 살피는 시각이 '안목'이고, 그 사물에만 집중하여 내면을 살피는 시각이 '통찰'이겠다.
 
그러한 안목을 배울 기대감으로 책을 빌렸고, 책은 쉽게 읽히고 소단원의 내용도 2~3페이지로 완결이 나는 짧은 주제의 글들로 채워져 있어, 잠언 에세이를 읽는 (혹은 자기 계발 서적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은 그만 읽고, 위의 어휘력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라는 철없는 어른의 우문(愚問)에 반하는, 통찰력있는 현답(賢答)을 듣고 싶었는데, 역시 그런 대답은 없나 보다. '좋은 어른'(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정의해야하겠지만.)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잠언들을 엮어 나온 책이다.(그리고 나 같은 철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통칭 '잔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책의 서문을 보며, '아 이것이 인문학이었지.'하는 마음이 다시 들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우주를 지닌다. 서로 다른 우주들마다 한 단어, 한 개념들이 서로 다르게 정립되어 있다. 그 개념 혹은 단어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문장, 다양한 표현들로 설명하여야만 다른 우주에게 그 개념 혹은 단어가 전달될 수 있다. 인문학의 오랜 특징이지만, 이것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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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과학과는 전혀 다르다. 집합의 원소의 개수(공집합은 0이라 정의한다.)로 자연수를 정의하고 나면 1, 2, 3과 같은 자연수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수학과 인문학은 다르다. a=F/m (m=질량, F는 힘벡터)로 쓰면 모두가 F를 힘으로 생각하는 과학과 인문학은 다르다. 정의와 공리, 연역적 탐구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과는 많이 다르다.

 
 

그리하여 '어른을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오랫동안 사색하며, 세상에 질문했다. 다 자란 사람, 돈을 벌기 시작한 사람,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독립해서 사는 사람 등 수많은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늬만 어른인 사람을 표현한 허상의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여 년의 사색 끝에, 나는 드디어 어른을 설명할 수 있는 한 줄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진실한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문장을 조금 더 쉽게 변주하면 '자신의 이유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6쪽, 같은 책.

 
김종원 선생님은 '어른'을 이렇게 정의하고 계신다. 어떤 의미로 어른을 정의하고 있는지 구구절절 이해가 된다. 내게 어른은 신체나이가 성년에 다다른 사람이겠으나, '좋은 어른'의 기준은 많이 높은 편이었고, 그래서 여전히 정의하기 어렵다. 무언가 현인, 철인(哲人)같은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잠깐 언급하였던, 'Integrity'를 이루어낸 사람 정도가 내 머릿 속 '배우고 싶은, 좋은 어른'의 이미지인 것 같다.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비록 나와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먼저 행동한 다음,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내게는 '어른'인 듯하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한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은 비슷한 표현이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서문 이후로는 책을 읽어내려갈 때마다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주제의 글도 참 많았지만, 읽는 내내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 불편함이 생겼다. 왜 그런 마음이 들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저자가 추천하는 책 읽기 방법대로 '최소한 3번 멈추며' 생각해 보니,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단정적인 어투를 쓰거나, "내 말이 다 맞아!" 라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혹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에게는 일단 나는 반감이 생기는 편이다. 평소에도 이러한 사람을 발견한다면, 가능한 한 피하려고 애쓴다. 오랜 시간 고민하신 분이고, 10년의 시간 동안 고민한 결과를 책을 통해 나누시는 것이니 확신에 찬 표현들은 당연할 수밖에 없지만, 내게는 그것이 조금 어려운 의사소통의 형태인듯하다.
 
그래도 와닿는 표현들, 나를 멈추게 하는 표현들을 옮겨둔다. 저자는 필사와 낭독을 중요시한다. (인문학 100문장과 같은 책이 많은 걸 보아도 그러하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최근 어떤 책을 읽었는데, 오랫동안 잠을 자고, 편안해야, 뇌가 최적화된 상태가 되어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하네요" 이 사람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 사람이 추구하는 삶은 무엇일까? 그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랫동안 잠자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라는 책의 메시지가 자신의 일상과 유사하며, 힘들이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동시에 생산성을 높이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는데,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나는 책에서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야!"라고 변명거리를 만들어두기 위해서다.
39쪽, 같은 책.

 
음… 나는 이런 이유로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저자의 이 이야기에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명시하고 싶어졌다.
 

1) 나는 배우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대학을 진학할 때만해도, '나 정도면 많이 배웠지! 굳이 더 배워야 할까?'와 같은 교만한 마음이 가득했다.

더닝 크루거 효과 : J Kruger, D Dunning (1999). 「Unskilled and unaware of it: how difficulties in recognizing one's own incompetence lead to inflated self-assessmen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7(6). p.1121–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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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교사로 고등학교에 머물러보니, 고등학생 때까지 배웠던 것으로 수업의 대부분을 채운다. 대학교에서 배운 미분 방정식, 면적분, 군, 환, 체, 유수, 위상동형 같은 것들을 활용한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나는 4년간 배우고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의 결론을 가진 채, 졸업을 하게 되었다.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의 '우매함의 봉우리'를 삶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이 많음을 인정하고 나니,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진다. 그리고 책을 통한 통찰과 안목을 키워감을 경험할 때마다, 책으로 배움을 쌓기로 결정했던 사실이 잘한 선택이었음을 계속 느낀다.
 
 

2) 나는 확인 받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성은 대다수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과는 조금 다른 방향성인 것만 같다. 힘에 부침을 느낄 때마다 '대충 살까 봐...'라는 마음이 생겨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때마다 대다수의 목소리는 '그래, 대충 하렴.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가끔, 책에서 만나는 나와 비슷한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내게 큰 위로를 준다. 그럼 또다시 삶을 살아갈 힘이 된다. 내 생각이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또 다른 위로가 된다. '어머. 나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도 그렇군요!'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분야는 달라도 모든 성공과 성장에는 디테일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대부분이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해야 하나?"라고 되묻는 것을 해내는 삶을 살면, 기적이 이루어진다. 일을 잘하는 사람들, 늘 기대 이상의 근사한 결과를 창조하는 사람들, 이름값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디테일이 살아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잘되는 사람은 계속 잘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결코 행운이나 불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은 굳이 더 힘든 선택과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매일 새롭게 경신하지만, 반드시 '그렇게까지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런 노력과 수고를 하지 않아서 더욱 뒤로 밀려나는 것이다.

독서도 그렇다. 굳이 읽지 않아도 현재의 지성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정작 독서가 필요한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치열하게 읽는다. 그래서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 나라와 주어진 환경의 격차는 개인이 어쩌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더욱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유일한 방법이다.

무엇을 해도 잘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주변에서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니?"라고 하는 부분을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으로 수긍하고, 반복하면 된다. 그런 디테일을 삶으로 받아들인다면, 온갖 행운과 기적이 자연스럽게 당신의 품에 안길 것이다.
81쪽, 같은 책.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은 바로 그 한 가지를 하는 삶. 이것이 나에게도 필요하겠다. 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오히려 ‘그거 할 시간에 다른 거 하겠어요’라고 주변의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한가지를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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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는 이것이 우리를 성공과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직전에 읽은 책인 데다, 결국 비슷한 방향성의 자기 계발서의 갈래라서 계속 비교하게 되는 듯하다. 물론 이렇게 비교하며 읽는 것 또한 좋은 독서활동이 된다. 생기부에 쓰기 좋은 활동이란 뜻이겠다..^^)

 
나의 삶에 대응해보면 이런 것들이 있겠다. (더 떠올리고 실천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더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주변에서 생각나면 꼭 알려주시길.) 1) 굳이 매주 수능 기출문제 숙제 검사를 하는 것. 2) 생기부 내용을 각 개인에게 미리 확인시켜 수정 및 대응의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 3) 생일편지와 성탄 편지를 담임 반 학생들에게 쓰는 것. 4) 학급 경건회를 학생들끼리 진행하게 두지 않고 최대한 내가 돕는 것.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의 학교 업무는, 내돈내산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이 생긴다!) 승진과 명예를 얻는 방법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원해서 하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에만 분노할 수 있고, 반대로 이해한 것만 칭찬하며, 경탄할 수도 있다. 당신이 지금 분노한 것과 칭찬한 것 모두가 결국 당신의 수준인 셈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가 분노하거나 칭찬한 것을 보라. 거기에 그 사람의 수준이 낱낱이 적혀 있다.
113쪽, 같은 책.

 
학습지로 한자를 배우고 사자성어를 외우던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이러한 말들이 어른들의 공부를 위한 변명이자 그다지 설득력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이 다 착하고 성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근주자적(近朱者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일수록, 이 사실이 마치 진리처럼 와닿는다.
 
내 삶의 영역은 내가 알고 있는 세계로 한정되고, 내가 보는 것은 내 역량과 지혜의 영역으로 인식 가능한 세계만 보인다. 내가 인식하는 세계의 크기와 넓이와 부피는 내 주변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주변 환경의 시야 이상의 차원을 보려고, 그 벽을 넘어서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주변에서 만나는 상황과 주변 사람들의 생각대로 살아가게 된다.
 
물론,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인식과 지혜의 경계'를 초월하려 애쓰면 충분히 주변 사람들보다 더 넓은, 높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도 한다.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 주변의 환경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아도 충분할 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어렵다. 보는대로 생각하여도 일상은 충분히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생각해 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주변 환경에서 지시하고 시키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주변에서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인 것으로 알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오래오래 이 사실을 기억해라.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137쪽, 같은 책.

 
내가 쓰는 거의 모든 편지에 이 표현을 쓴다.

"사랑스럽고, 또 사랑받을만하며, 다시 사랑스러운 000"

그리고 나는 이것을 줄여 '사또다시'라고 부른다. 이 짧은 표현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사랑받을만하며'이다.
 

사랑받을만하다.

 
글자만 보아도 위로가 생겨나는 것 같다. 사랑받을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스럽다.
 

You deserve it.
You deserve to be loved.

 
 
 

"자신이 실제로 운동한 것보다
두 배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했다고 착각하고,
반대로 자신이 실제로 먹은 것보다
절반 수준만 섭취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과 상상의 격차가 4배로 벌어지니.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살은 더 찐다."
(중략)
"자신이 실제로 상대에게 전한 마음보다
두 배 더 많은 마음을 줬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자신이 실제로 상대에게 받은 마음보다
절반 수준만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현실과 상상의 격차가 4배로 벌어지니
인간관계에 열을 올릴수록 관계는 더 악화된다."
187-188쪽, 같은 책.

 
사랑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 가지 나만의 틀이 있다.

"더 사랑할 것."

관계안에서 상처받기를 기꺼이 결정할 수 있을 정도까지,
그 정도까지 더 사랑할 것.
 
관계에서는 이것 하나만 신경 쓰면 충분하지 않을까?
 
 

소제목 :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5가지 방법

첫째, 한 달에 한 권으로 시작하자.
둘째, 최소한 10번 이상 반복해서 읽자.
셋째, 매일 30분 읽으며, 최소한 3번 멈추자.
넷째, 멈춰서 3단계 질문을 하자.
다섯째, 질문에서 나온 답을 글로 쓰자.
212쪽, 같은 책.

 
결국, 그저 많이 읽기보다는 "읽으며 생각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하고 싶으셨나보다.
두 번째 방법에서부터 나는 이 다섯 가지 방법이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유도된 결론이 아닐 것이라 확신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경험이 선행되지 않았음을 판단한 근거는 '최소한 10번 이상 반복해서'라는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두 번,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읽을 때 생겨나는 구체적인 변화가 기술되어있지 않고 추상적인 완전 수 10번을 차용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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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은 글 : 실제로 만약, 저자분께서 책 한 권을 10번 읽으신다면... 죄송스럽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ㅠㅠ 하지만 실제로 책을 10번 읽을 만큼 좋은 책이 아닌 책들도 시중에는 많다... 저자가 존경하는 괴테의 글은 20번도 읽을 테지만.

 
 

"내가 항상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항상 도전할 수는 있다.
할 수 있는 걸 선택하면,
결국 할 수 있는 게 늘어난다."
223쪽, 같은 책.

 
그다지 이기고 싶지 않다. 그러한 삶을 기대하지 않는다. 성공하는 삶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매일 도전하기는 멈추지 않고 싶다. 도전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며, 그렇게 삶으로 도전을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자신이 만난 사람이 짐작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르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 2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매우 결정적인 부분인데, 바로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을 제대로 보는 안목이 없으니, 자꾸만 생각과 달라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 사람의 말과 글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면, 만나서 실망할 일도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실망했다는 말은 스스로 자신의 안목이 매우 낮은 수준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263쪽, 같은 책.

 
오! 통찰력 있는 글이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의 안목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