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서평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배우는 시간

꿈잣는이 2024. 8. 17. 10:24

김종원.(2024).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 마인드셋. 초판. 내 마음대로 매긴 별점 :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다양한 표현들, 그것에 대한 저자의 안목, 그리고 마음에 새기고 필사할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 75편을 묶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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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글로 밝혀진 글에 원전, 혹은 번역에 대한 출처가 하나도 없다. 참고하고 싶은데 참고할 수 있는 주석이 하나도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글, 그것에 대한 저자의 해설, 필사할 문장 세 영역의 글이 저자의 해설인지, 비트겐슈타인의 글인지 확인이 불가능하게끔 서술되어 있는 점이 읽는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75가지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언제 책을 읽든 우리이게 지혜를 건네주는 감사한 책이다. 특히 내게는 53번 ‘참을성이 많은 사람은 참을 게 많은 사람이다.’의 내용이 구구절절 공감되었다. 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유사했다. (이에 대해서는 책 ‘교회 구석에서 묻는 질문들’에 자세히 다룬다.) 또한 5장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저자의 안목은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는 읽는 동안 여러 아쉬움들도 많이 들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아쉬움이 생긴 점은 바로 '비트겐슈타인의 글과 저자의 해설 사이의 연결고리가 유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가령, 116쪽의 비트겐슈타인의 글을 해설하며, 저자는 자주 분노를 표출하는 ‘분노 조절 장애(분노 조절 잘해)’에 대해 언급한다.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기란 어렵다.
116쪽, 같은 책.

 

그리고 필사할 문장으로는 아래의 글을 안내해주셨다.

 

입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
늘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말과 삶이 다른 사람을 조심하라.
세상에는 그런 자가 수없이 많고,
그들은 늘 당신을 노리고 있다.
118쪽, 같은 책.

 

비트겐슈타인의 글과, 분노 조절 장애, 그리고 필사할 문장 세 단락이 어떤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지, 어떠한 논리적인 관계가 있는지 나는 찾아내기 어렵다. 저자가 말하듯 10번 읽고, 한 문장씩 곱씹으며 생각하여도 세 주제의 서로 다른 글 사이의 맥락 찾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을 75편의 글 중 58편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다. 물론 나만 그렇게 느낀 듯하다.(46번 사전 이야기와, 5장의 글쓰기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글에서 비슷하게 맥락 찾기가 어려움을 느꼈다.)

 

아쉬웠던 점들 중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저자의 삶의 양식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가 삶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글에 드러나지만, 저자가 삶에서 애쓰며 배운, 경험한, 변화한 저자 자신의 이야기들은 없다. 저자는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가르침과 교훈을 많이 주고 있다. 하지만 그 교훈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어떤 삶의 변화를 주었는지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만나는 '0000 하는 10가지 조언', '0000 하는 10가지 언어'와 같은 내용들이 내게 와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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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가지 조언을 모두 지켰을 때 만나게 될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나있지 않는데, 그 열 가지 조언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심지어 거의 매 글마다 조언이 7개씩 있으니, 책 전체에서 시키는 조언은 세어보지 않았지만 200개는 될 듯하다.

 

그래서 더더욱 이러한 조언과 삶의 지혜들이 "치열한 삶에서의 분투 끝에 얻어진 결론"이 아니라,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게만 느껴진다. 저자가 언급한 ‘아는 척’하는 것이 마치 이런 게 아닐까. 치열한 사색은 무척 중요하지만, 책상에 앉아서 사색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이기 어렵다. 비트겐슈타인은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교수, 노동자, 건축가, 교사, 수도원, 은둔자의 삶을 살았고, 그 과정에서의 분투와 사색의 결과로 다양한 저서를 저술했다.(실제 생전에 출판한 책은 단 한 권이지만) 과연 저자는 어떠한 삶의 노력 끝에 지금과 같은 사색의 결과를 얻으셨을까?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 표현을 216쪽에서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글이라는 ‘남’만 매일 바라보며 살고 있다. 사람들만 관찰하며 글을 쓰니, 정작 정말 중요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인사이트가 전혀 없는 글만 쓰게 된다.
216쪽, 같은 책.

 

물론 저자의 글은 엄청난 통찰들이 가득 담겨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한 삶으로부터 유도된 통찰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의 약력과 삶을 1시간 가까이 검색해 보았는데, 저자를 포장하는 표현으로는 '100권을 쓴 저자', '100만 부를 판 저자'의 표현들만 보인다. 그래서 어떠한 삶을 사셨고, 0000을 위한 7가지 방법을 통해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30년 동안 100권의 책을 쓰셨으니, 3개월에 한 권씩 책을 출간하신 셈이다. 그런데 저자는 1년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책 한 권을 열 번 읽을 것을 권하고 계신다. 저자가 쓰신 책만 읽어도 1년에 한 권의 책을 읽는데 100년이 걸려야 한다. 우리는 저자의 책조차 다 읽지 못하고 삶을 끝내야 한다. 이 역설을 나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 "아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안다고 말하려면,
당연히 그걸 할 수 있어야 하고, 
명쾌하고, 짧게 설명까지 가능해야 한다.
그 2가지가 모든 성장의 시작이다.
241쪽.

 

 

사족.
이 책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다』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언어를 통해 내 세계를 확장시키고 싶다!'는 내 의지를 구체적인 삶의 행동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내 언어의 한계를 어떻게 확장하는데? 내 언어의 한계가 확장되어야 내 세계를 확장하는데... 내 언어의 한계를 확장하는 방법은 없고, 읽어도 읽어도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7가지, 어떤 장소에서든 주인공이 되는 생각법 7가지만 적혀있네.'라는 생각들만 가득했다.

책을 덮고 저자를 검색하고, 비트겐슈타인을 검색하면서야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유명한 한 구절이었다. -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2))

결국 전혀 다른 책에서, 다른 것을 찾고 있었다. 책의 무수한 표현들처럼 '육아서적에서 자기 계발의 영역을 찾거나, 마케팅 서적에서 육아 지식의 안목을 쌓는' 시간이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그 방향성은 알고 책을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서, 여러 검색들을 거친 이후에서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