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물이 아니라 손님으로 대하기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의 ‘가장 특별한 손님’입니다.
- 버지니아 사티어
자녀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부모님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손님임을 내가 꼭 기억하면 좋겠다.
자녀가 태어나니, 책 속의 내용들이 허투루 여겨지지 않는다. 은결이가 저자의 둘째 아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까. 쉽지 않은 저자의 삶이 벌써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살아보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나만큼이나 마음 아파하고 긴장한 사람이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고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절감한 최초의 사건은 출산이었다.
124쪽, 같은 책.
늦은 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는 분만실의 내가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 겪어내야만 하는 이 과정은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긴 여정만큼이나 의미 있는 순간이고 충분히 가치 있는 고통이지만, 결코 반갑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그냥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125쪽, 같은 책.
아무리 생활기록부를 예쁘게 쓰더라도, 무수한 수학 수업을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여정을 마주하고 책임질 시기는 반드시 오고, 그때에는 결국 스스로가 그 언덕을 넘어가야만 한다. 예쁜 생활기록부와 면접 없이 서류로만 합격이 결정 나는 대학진학이더라도 언젠가는 스스로가 마주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으니, 우리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감당할 수 있을 사람으로 기르는 것에 집중하면 좋겠다.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어느 가족 이야기다. 부모의 목표는 네 아들을 모두 의대에 진학시키는 것이었고, 부부 모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아이들의 학업을 살뜰히 챙기고 있었다. 성적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아다니는 모습에서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기억에 남는 한 대목이 있다. /
한 아들이 꼭 의대가 아니라 약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는데, 부모가 단호히 안 된다고 했다. 이유는 심플했다. 부부 모두 병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은 부부에게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했다. 그래서 자녀들은 병원 속 최상위 계급인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선망이 생겨났고, 자녀들의 목표는 '의대 합격'이 되었다. /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자식들이 교대에 진학하기를 염원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급식실에 근무하는 영양사였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조직은 어쩔 수 없이 교사라는 직군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운영되고 있다. 교사의 입김이 가장 세고, 나머지 직군들은 교사의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126-127쪽, 같은 책
간호사와 약사가 아니라 의사여야만 하는 이유.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 간다. 부사관이 아니라 장교여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고, 교육행정직이 아니라 교사여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고, 항공기의 객실 승무원이 아니라 운항 승무원이어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군 간부로 병역을 이행하며 잔소리와 같이 들었던 표현이다. 비록 군인은 계급에 충성하지만 그 계급은 직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직책에 맞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의료계열에서도, 교육 계열에서도, 항공 승무원에서도 그것은 동일할 것이다. 의사가 없으면 치료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맞지만, 간호사 약사 둘 중 하나가 없어도 치료는 이루어질 수 없다. 교사가 없으면 수업이 운영될 수 없지만, 행정실 선생님들이 없으면 학교 자체가 운영될 수 없다. 운항 승무원이 없으면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겠지만, 객실 승무원이 없어도 여객기가 운항을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직책과 역할은 유기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지 그것을 계급화하고 직책을 높이로 측정하려는 시각은 이제 멈추면 좋겠다.
엄마로서의 내 꿈은 이 아이가 내 눈에만, 집 안에서만 사랑스러운 아이로 기억되지 않는 것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눈에도 기특하고 사랑스럽기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오가는 집 밖에서도 먼저 챙겨주고 싶고 흔쾌히 도움을 건네고 싶은 사람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152쪽, 같은 책.
내가 부모로 근무 중인 우리 집에서 '단 한 명의 금쪽이도 양산하지 않겠다'라는 목표로 바라보면 육아는 자못 심플해진다. 153쪽, 같은 책.
아이가 생김을 깨닫자마자, 이 마음이 가장 먼저 생겼다. 그저 다른 아이를 때리지 않는 아이로 자라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조금 더 소망을 키워본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 정말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자의 표현처럼 나도 언젠가 ‘눈이 돌아간 부모’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러면 좋겠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보니 여기가 또 어마어마하다. 아, 입학도 하기 전에 한차례 겪었다. 자사고 입시를 위해 면접과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다 보니, 학교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는 업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첨삭 정도 해주려니 했던 내가 순진했다. 입학하고 보니 이 바닥도 가관이다. 대학 입시에서 수시 원서 여섯 장의 승패를 가르게 될 학교생활기록부.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생기부에 기재되는 탐구보고서 등의 자료를 대신 써 주겠다는 전문가들이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신해 준 답지를 외워 수행평가를 적어내고, 대신 작성해 준 탐구보고서로 생기부를 채우는 인생. 결국 우 수한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리라는 예상이 가 능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대학 합격이 아이 인생의 유일 한 목표나 도착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162쪽, 같은 책.
내 아이에게 실패할 기회를 기꺼이 주겠노라 다짐했다면, 내 아이에게 감정당할 기회를 기꺼이 허락하는 것도 엄마의 선택일 것이다. 그 어떤 감정도 흠집도 없이 그저 꽃길만을 걷게 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엄마를 사실 아이는 멀찍이 떨어져 다정하게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163쪽, 같은 책.
아내가 근무한 사교육도 비슷한 공동체였고, 실제로 비슷한 사교육 컨설팅을 받으며 생기부를 진단받는 학생들이 주변에도 많다.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가득하다. 그러나 나도 비슷하게 생기부를 써주고 있는 입장에서, 대학교 입학 관계자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50의 학업 성취를 70의 성취를 해낸 학생으로 생활기록부를 쓰는 내가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정시 컨설팅은 이미 만들어둔 점수를 가지고 학생이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를 찾는 일이니 이 일은 또 예외로 하고 싶다.)
이 생각이 언제나 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 학생이 2년, 3년 뒤에 해낼 역량에 대한 기대를 지금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낸 성취들에 대한 기입만이 지금 그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세부특기사항이지 않을까. 배우기를 애쓰고 노력하는 딱 그만큼만 우리는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기에도 12년의 학창 시절은 짧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교육기관에서부터 거짓말하기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성실함의 결과는 내가 정성껏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나쁘지 않은 상태로 등교하는 것까지다. 엄마인 나는 아침밥을 차리는 성실함을 목표로 했으니 아침밥을 차렸다면 결과를 낸 것이고, 그걸 적당히 먹고 시간 안에 등교한 아이는 훌륭한 결과물이다. 아침밥을 성실히 차려냈던 건 아이의 좋은 성적을 겨냥한 게 백번 맞지만, 아이의 성적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아침밥을 먹은 아이가 시간 안에 학교로 출발한 것까지만 평가 요소로 삼으면 어느덧 일상에 평화가 찾아온다. 233쪽, 같은 책.
그래서 저는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
성적을 기대하고,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그 목표를 강요하고 싶은 지금의 내 마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이의 인생을 위한 것인지 짚는 일에 일부러 시간을 냅니다. /
아이 본인이 괜찮다는데, 이 정도면 만족하겠다는데,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데 부모가 포기하지 못하고 아이를 설득하는 데에 정성을 쏟는 이유가 정말 온전히 아이 인생을 위함인지에 관해서는 한 번쯤 짚어야 할 일이라 생각해요. 285쪽, 같은 책.
내 성실함의 결과로 아이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아야 하겠다. 책의 한 제목(246쪽)처럼, 아이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 되고 아이의 실패가 내 실패가 되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와 아내의 가정에 선물처럼 찾아온 손님으로, 누엘이를, 그렇게 은혜의 물결을 맞이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