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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클래스 표준화(standardized) 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

꿈잣는이 2022. 11. 18. 22:39

 

2022년 11월 17일, 23학년도 대학 입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을 치렀다. 나는 22학년도 수능에 이어, 두 번째로 수능 감독 종사 요원으로 차출되었다. 작년에는 중학교 선생님으로 감독 요원에 차출되었는 데다, 감독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시험 내내 제 2, 3 감독관으로만 종사했다. 이번엔 작년의 감독 종사 경험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감독관에 차출되었기에, 당연히 제 1 감독관으로 종사할 것이 예상되었다. 처음 배울 때 정확하게 배워두자고 다짐한 작년에도 감독관 유의 사항을 기말고사 공부하듯 공부해서 갔고, 올해는 더욱 긴장한 채 감독관 유의 사항을 공부했다. 감독관 유의 사항을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싶은 내용들이 있다.

 

11월 16일 수능 예비소집일, 교사들도 예비 소집에 반드시 참석하여, 종사 요원 연수를 들어야만 한다. 이 책들을 기반으로 연수를 진행하며 이후 이 책자 3권을 숙지하여 다음 날 시험 감독 업무를 진행한다.

 

전국 1,265개의 시험장에서 동시에 시험이 치러지지만, 모든 시험장에서 '똑같은' 시험이 시행된다. 사실 대한민국에 이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과 같이 국가 면적이 넓다면 08시 40분에 국어 영역 시험을 모두 동시에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정력이 필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수능에서는 수험생이 08:10분에 입실을 완료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을 회수하는 것부터 지진 발생 시 유의 사항 등의 안내 사항이 방송으로 '똑같이' 안내된다. 같은 전달 사항을 녹음파일로 방송으로 틀어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이뿐만이 아니다. 감독관 유의 사항에는 제 1 감독관이 시험실 정면 중앙에서 수험생에게 말해야 하는 유의 사항을 예문으로 안내하고 있다.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탐구 영역 제1선택 과목이 아닌 제2선택 과목의 문제지를 보거나 책상 위에 올려두는 행위, 제1선택 과목과 제2선택 과목의 문제지를 동시에 보거나 책상 위에 올려두는 행위, 제1선택 과목 시험 종료령 후 답안 작성 또는 수정 행위 등은 모두 부정행위 처리되며, 수정은 기존 답을 지우거나 새로운 답을 작성하는 것을 모두 의미합니다. 수험생 여러분은 이상의 내용을 특별히 유의하여 시험에 임해주시기 바라며, 칠판에 부착된 4교시 부정행위 유형을 확인해 주십시오." 제 1 감독관은 위의 내용을 4교시 한국사 영역을 마친 뒤, 15시 30분에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이 끝나는 대로 읽어주어야 한다.


6행 4열의 시험실 좌석 배치와 좌석 번호 배정이 정해져 있는 것은 당연하며, 책상 위의 붙이는 수험번호 스티커는 책상의 오른쪽 끝에서부터 아래로 2cm, 왼쪽으로 3cm 떨어뜨려서 붙여야 한다. 모서리 끝에서부터 각각 2cm, 3cm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떨어뜨린 채 스티커를 붙이기 위한 가이드 판도 제작한다. 시험장에 들고 올 수 있는 '모든' 물품은 1)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 / 2) 시험 중 휴대 가능 물품 / 3) 시험 중 휴대 가능 물품 외 물품 /으로 구분한다. 수험생 개인용 샤프심, 혹은 물통, 혹은 담요는 '시험 중 휴대 가능 물품(2번)'인지, '시험 중 휴대 가능 물품 외 물품(3번)'인지 물건을 볼 때마다 직접 찾아본다. 배부하고 남은 여분의 답안지와 문제지는 '짝수형 문제지 봉투'에 담아야 한다. 수험생들에게 배부하여 풀게 한 뒤, 이름과 수험번호를 작성하여 회수한 문제지는 '홀수형 문제지 봉투'에 담아 반납한다. 시험 시작 타종 / 종료 타종이 '제시간보다 일찍 친 경우 / 늦게 친 경우'에 대한 각각의 대처 요령도 모두 안내되어 있다. 준비령이 울렸을 때, 제 2, 3 감독관은 답안지를 책상의 '오른쪽'에, 문제지를 책상의 '왼쪽'에 두어야 한다. 4교시 탐구영역에서 추가로 나누어주는 탐구영역 문제지 봉투는 책상의 '오른쪽'에 두어야 한다. 종료령이 울렸을 때, 수험생들은 답안지를 책상의 '오른쪽'에, 문제지는 책상의 '왼쪽'에 두도록 안내한다. (물론, 답안지를 오른쪽에 두지 않는다고 부정행위가 되는 건 아니다. 혹여나 수험생들이 긴장할까 봐 감독관은 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열 번 넘게 고민하고 주의를 준다.)


이 모든 내용이 응시 유의 사항과 수능 시험장 설치요령 책자에 적혀있고, 전국의 시험장 종사 요원 선생님 및 감독관 선생님들이 이를 숙지하여 시험을 진행한다. 1,200개가 넘는 시험장에서 시험이 진행되지만, 모든 시험장이 같은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한국 교육 과정 평가원은 만들어내었다. 매해 수능마다 평가원은 50쪽이 넘는 응시 유의 사항을 발간하고, 감독관 선생님이 들고 들어가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핸드북 매뉴얼을 발간하고, 그것도 모자라 각 시험장마다 종사 요원 연수자료를 다시 또 제작한다.


'표준화' 시험에서 '표준'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전인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 '표준'은 1) 사물의 정도나 성격 따위를 알기 위한 근거나 기준 / 2) 일반적인 것. 또는 평균적인 것. / 3) 물리량 측정을 위한 단위를 확립하려고 쓰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기준적 사료. 로 설명하고 있다. 수능에서 사용하는 '표준화' 시험의 두 의미는 아래의 두 가지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표준화 시험(standardized test)'의 의미는 일관되고 표준적으로 채점되고 시행되는 시험을 의미한다. 문항의 질문과 해석이 일관되고 사전에 정해져 있다. 수학 영역의 발문은 선택형(객관식)의 '의 값으로 옳은 것은?' 그리고 단답형(주관식)의 '값을 구하시오.' 두 가지뿐이다. 영어 시험의 빈칸 추론, 일치 불일치, 국어 시험의 추론 문항도 그 발문이 몇 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통계에서 사용하는 '표준화'의 의미를 함께 갖기도 한다. 통계에서 사용하는 표준화는 평균과 편차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 임의의 정규분포를 단 하나의 분포로 변환하여 그 분포의 특징을 찾는다. 서로 다른 평균과 편차를 '표준화' 과정을 거치면 평균 0, 표준편차 1의 '표준정규분포'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표준 정규분포 속 확률로 분포에 대응하면, 39만 명이 넘는 서로 다른 수험생을 1등부터 393,502등까지 성적순으로 한 줄로 나열할 수 있다. (23학년도 수능은 47만 명이 접수해서, 393,502명이 응시하였다.)


수능은 1교시 본령 타종 전까지 전자기기를 제출하지 않으면 전자기기를 소지하고만 있어도 부정행위가 된다. 점심시간에 전자담배를 피우는 수험생을 발견한 다른 수험생은 그 수험생의 시험실과 좌석을 확인한 뒤, 고사본부에 어느 수험생이 전자담배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고발한다. 대한민국은 '공평'과 '공정'이 가장 큰 지켜내야 할 가치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현재의 흐름에 걸맞게 대입 수능 시험은 세계의 어떤 표준화 시험들보다 '표준화' 되어있다.


수학능력시험은 이 두 가지 '표준화'를 모두 완벽하게 이루어내는 아주 특별한 시험이다.


무엇이 먼저였을까? 공평하고 공정한 대우를 소망하는 것이 먼저였을까? 그래서 이토록이나 대한민국 전체가 똑같은 시험을 치르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똑같은 기준 아래의 똑같은 평가를 추구하는 것이 먼저였고, 그러한 삶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공평함과 공정함을 삶의 가장 높은 가치로 두게 되었을까?


93년 겨울부터 수능을 치렀으니, 벌써 30번의 수능이 지났다. 한 세대가 모두 수능을 치러냈다. 이제 학력고사를 경험한 학부모님보다 수능을 치러낸 학부모님들이 더 많아진다. 똑같은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이제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표준화 시험'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그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는게 당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