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대로 생각하기 VS 생각해내어 살아가기
“Vous...
Vous devez vivre comme vous pensiez,
sinon aussitôt vous penseriez comme vous vivez.’’
- Paul Valéry (1871~1945)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 폴 발레리 (1871~1945)
잊지 않기 위해 애쓴다. 어떠한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교사로 살아가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그저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것을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머물러있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과, 생각해내어 살아가는 삶의 예시를 들 때 항상 부모님을 떠올렸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던 아버지와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셨던 어머니가 서울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셨다. 14살부터 서울에서 살았던 나는 지역갈등과 정치색 없이 자라났지만, 두 분 부모님은 그럴 수 없으셨고 선거철만 되면 항상 집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며 선거철마다 '생각해내서 투표해야 하겠다'라고 생각했고, 모든 선거마다 선거 홍보자료를 하나씩 읽어보느라 온 하루를 보냈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해내어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한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정치 분야에서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내 가치관이 없는 듯하다.
나는 중학교 2학년부터 목동에서 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내내 반에서 3~5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목동의 학교였기에, 반에서 15등인 학생까지 외고 입시를 준비했다. (학급 정원이 42명이었다.) 영어를 못했고, 그렇다고 과학고에 갈 성적은 아니었기에 특목고 대신 목동 지역의 일반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학급에서 모의고사로는 백분위 평균이 97~92 정도가 나왔다. 내신은 3점 후반~ 4점 초반의 등급을 받았다. 내신에 비해 모의고사가 더 점수가 높았으니, 당연히 수능 위주로 공부했다. 수능 위주의 공부가 자연스러운 학교였고, 학생의 공부를 모든 방면에서 배려해주는 학교에 다녔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당연한 목동 지역에서 자랐던 나에게, '표준화 시험'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시험이었다. '지역 균형 선발'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모든 학교마다 2장의 서울대 티켓이 주어지는 것이 나에게 '이것이 정말 공정한가?'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강남과 지방의 교육격차는 분명 존재하지만, 강남에서도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듣는 것이 보편화되어있기에, 지방에서도 인터넷 강의를 기반으로 준비한 학생들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있는 평가라고 생각했다. 학생부 종합전형, 논술전형, 교과 전형과 같이 다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형평성이 높은 평가 방법이라 여겼다.
그렇게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모든 수업의 방향성은 '그래서 이 개념이 수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가?'로 수렴했다.
내가 살아왔던 삶으로 생각한다면, 수능이 가장 공평한 평가 방법이 된다. 하지만 4년의 학부교육과, 현장에서 이어진 경험과 교육 내용을 되짚어보며 마음이 계속 바뀐다. 특수교육으로의 진학을 소망하는 학생에게 합성함수의 도함수 연산을 해내야만 하는것일까. 정치 외교를 전공하고 싶은 학생에게 거듭제곱근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방정식을 세울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퇴근후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는 길마다 물음표가 남는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출근하고 나면 다시 '그래서 오늘은 어떤 수능 유형을 다루어보아야 할까?' 고민한다.
생각해내어 살지 않는다면, 매 순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삶의 진리인 듯하다. 어떻게든 생각해내면서 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