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 아래서

2022학년도 2학기 선교부 수련회

꿈잣는이 2022. 9. 12. 02:15

8월 23일 (화)


학급이 매 학기 학급회 임원을 뽑듯, 학급에서 선교부회장과 선교부장을 선출한다. (선교부회장은 띄어쓰기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선교부 회장일까, 선교 부회장일까. 학급회장 / 학급부회장 / 선교부회장을 뽑는 것으로 보아, 행정 부회장과 선교 부회장, 이렇게 두 부회장 체제를 지닌 것으로 추측한다.) 우리학교는 일반 인문계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생들이 많다. 따라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 선교부회장을 선출할 때 선거 대신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학급 담임 교사는 전부 그리스도인이기에, 담임 선생님의 재량으로 뽑기도 하고, 지원받아 면접을 보는 곳도 있다. 지원자가 없다면 담임이 지목하여 선출되기도 한다(이렇게 선출된 선교부회장은 어찌나 힘이 들까!) 선교부회장과 달리 선교부장은 총무부장, 서기 등과 같은 학급회 임원의 지위를 갖게 되는 듯하나, 그 둘의 학급에서의 역할은 비슷하다. (따라서 1학기의 선교부회장이 2학기의 선교부장으로, 1학기의 선교부장이 2학기의 선교부회장으로 역할이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교부회장과 선교부장은 1주일에 4번(5일의 등교일 중 1교시 예배가 없는 월, 수, 목, 금) 아침 조회 시간마다 학급 경건회를 진행한다. 중학교는 전도사님이 경건회 자료를 모두 만들어주시지만, 고등학교는 선교부회장과 선교부장이 그 시간을 온전히 담당한다. 따라서 학급 회장 / 부회장과는 그 역할과 무게가 전혀 다르고, 학교에서는 조금 더 특별하게 이들을 챙긴다. 우여곡절 끝에 모집된 선교부회장과 선교부장은 학기 초마다 선교부 수련회에 참석한다. 당연히 선교부가 아닌 타 부서 학생과 교사는 참석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며칠 전, 선교부 담당 교사가 아니어도, 선교부회장 / 선교부장이 아니어도 선교부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교부 수련회에 시간 맞춰 방문했다. (화요일마다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 갔지만, 같은 예배이니까!)


방과 후에 또 모여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부담이었을 텐데. 다시 또 자리에 모인 선교부 임원 친구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안쓰러움이 생겼다. 각 학급에서 개인의 예배를 지키기도 어렵다. 그런데 예수님의 거울과 같은 모습으로 학급에서 살아내는 것은 얼마나 지칠까.


아주 냉랭한 마음으로 기독교 사립학교 3년을 지내왔던 나였기에 학급의 차가운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선교부장을 시키려고 했던 담임선생님들에게 '네? 저는 그런 거 안 합니다. 그런 시간 낭비 왜 하죠?' 하던 학생이 바로 나였다. 교회 다니는 친구들의 냉랭함이 더 그들의 마음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알고 있다. 3년의 내 경험으로 인해 선교부 임원들의 마음 씀씀이가 벌써 염려되고 걱정이 되었다.


3년간 선교부회장을 맡은 뒤, 올해 2월에 졸업한 20살 언니의 특강을 마치고, 목사님께서 진행해주셨던 짧은 나눔 시간이 특별히 위로되었다. 강단에서 단 한 번도 정장 단추를, 구두를 벗지 않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직분을 맡은 자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는지 아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목사님께서 먼저 정장과 구두를 벗으셨다. 학급에서의 삶은 어렵지만, 이렇게 우리가 모인 자리에서는 어려움을 투명하게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하셨다. 예수님의 거울로 사는 삶은 너무나 어렵다. 그런 그들이 선교부 임원들, 그리고 교목실에서만큼은 쉼과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나눔과 함께, 또 목사님께서는 나의 정장에 관한 생각을 소개해(?)주셨다. 학생들이 교복을 입듯, 나는 정장을 입는다. "내가 정장 입으니 너도 교복 입으렴!"의 꼰대 중의 꼰대 마음이기도 하겠지만, 온전한 나의 마음은 이와 같다 : '요즘 교복은 참 불편해. 내가 여성도, 학생도 아니니 너희의 옷을 함께 입을 수는 없어. 대신 내가 이 불편한 옷을 입으며 너희 마음과 몸의 불편함에 함께 하기로 결정해.'


이번 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아니, 매해 더웠다. 오히려 올해는 덜 더웠다. 하지만 올해는 교무실에 에어컨을 더 적게 틀었고, 여름방학이 유달리 짧았다. 12일 뿐인 방학이었으니.) 매해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올해는 내가 여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과연 올해는 내가 겨울을 잘 버틸 수 있을까?'
'단벌 교사 역할을 언제쯤 그만하게 될까?'

 


그런데, 이제는 정장을 입지 다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A day may come when the courage of men fails, when we forsake our friends and break all bonds of fellowship, but it is not this day. An hour of wolves and shattered shields, when the age of men comes crashing down, but it is not this day.
(Peter Jackson (2003). "The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New Line Cinema. Movie.)

나의 가치관이 타협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올해는 아닐 것 같다.

 


사족.
우리 반이 학급 경건회 우수상(등위 : 1등)을 받았다. 자연 계열 학급은 그 특성상(?) 경건회 진행이 어렵다. 특히 우리 반은 선교부장 / 선교부회장이 요일을 나누어 경건회를 진행하지 않고, 선교부회장 혼자 오롯이 경건회를 감당한다. 어려움이 많을 듯하여 선교부회장 학생에게 4일 중 1일은 내가 경건회를 진행하는 게 어떤지 물었고, 그렇게 금요일마다 내가 경건회를 진행했다. 열악한 우리 학급의 상황을 보시고, 선교부회장 아이를 위로하려고 우리 반에 이 상을 주신 건 아니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