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 아래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타 반 학급 경건회 인도)

꿈잣는이 2022. 9. 22. 22:52

(feat. 과거가 현재에게.)
2022년 9월 21일(수)
선교부 수련회에 가서야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급 경건회를 매번 선교부회장 / 선교부장이 인도하는 게 어렵고 힘이 드니, 선생님들을 초청하여 경건회를 인도하시도록 요청하는 것. 선교부 수련회 자리에 함께했었기에, 몇몇 선교부회장 선교부장에게서 요청이 왔고, 어제 처음 2-4반에서 경건회를 인도하였다. 수업을 들어가는 1, 2, 7, 8, 9라면 그래도 아이들 이름이라도 외우고 있을 텐데. 라포르(Rapport)도 면식도 없는 친구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되었지만. 기도하며 문득 들었던 마음은.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해주면 되겠다.'였다.
처음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부터 매해 종업식마다 편지에 담았던 내용을 3분으로 줄였다.


 

1. "네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

얼굴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저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고, 또 사랑받을 만 하고, 다시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어. 눈이 작고 코가 낮고 살이 좀 쪘어도 괜찮아. 그런 것들이 너희를 사랑스럽지 못하게 만들지 못해.

2. "끔찍한 세상에서 삶을 멈추지 않기로 결정하면 좋겠어."

우리 학교 정말 끔찍하지?^^ 하지만 장담컨대, 이곳을 졸업하고 스무 살, 스물한 살이 되고 나서 만나는 사회는 더 끔찍할 것이 분명해. 나도 그랬었으니까. 성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적어도 고등학교는 '성적'으로만 우리를 차별했더라구. 이제 2년 뒤면 더욱 끔찍한 곳으로 가겠구나. 그곳에서 삶을 멈추는 대신, 다시 한번 살기로 결정해주면 좋겠어. 힘들면 이곳에 다시 찾아오렴. '여기가 끝판왕인 줄 알았는데 여긴 천국이었어요.'라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도 괜찮아. 이곳에서 위로를 받아 갈 수 있길 소망해.

3. "조금이라도 세상이 아름다워지도록 애써주면 좋겠어."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그곳에서 삶을 살아내는 것에 성공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세상이 아름다워지도록 애써주면 좋겠어. 물론 한 사람의 노력으로는 티도 안 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좋겠어. 그렇게 나도 여기 이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먼저 애쓰고 있을게. 너희도 너희의 자리에서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도록 애써주길 부탁하고, 요청해. 그렇게 내가, 그리고 너희가, 매해 조금씩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4. "2000년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나, 오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먼 훗날, 2000년 뒤에 우리가 다시 만나, 오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비록 내가 지금은 너희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외우지도 못하고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2000년 뒤에는 할 수 있을 거야. 왜냐면 나는 죽음 이후의 삶을 믿어. 그리고 영원히 살 것도 믿어. 영원히 살면서 네가 살아왔던 이야기, 끔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 그렇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썼던 이야기들을 천천히, 하나씩, 전부 이야기 듣고 싶어. 이런 이야기도 하겠지! "00아. 너 만 년 전 2022년 기억나? 00고등학교 2학년일 때. 그때 너 정말 진짜 공부 지지리도 안 했잖아!ㅋ 근데 이렇게 잘 큰 걸 보면 말이지. 정말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 건 확실한 것 같아.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