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필요해요.1)
일찍 퇴근하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한 날이었지만, 또 21시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 1학년 체육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송내역까지 가게 되었다. 체육 선생님께서는 목사님과 함께 사제동행 캠프 준비를 하셨고, 이어서는 캠프에 함께할 선생님을 찾으시다 늦게 퇴근하신다고 하셨다.
사제동행 캠프를 함께 할 선생님을 찾고 있는 시기이다. 2019학년도까지의, 코로나 이전의 사제동행캠프는 이번의 것과는 사뭇 많이 달랐나 보다. 많은 선생님의 참여와 헌신보다는 졸업생들의 참여와 헌신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하셨다. 이번 캠프에서는 선생님들의 더욱 많은 참여를 요청하신다.
체육 선생님은 동료 선생님들께 이렇게 콜링(Calling)하셨다.
"나와 함께, 밤에 수박 잘라먹을 사람이 필요해요."
여름의 한가운데, 금쪽과도 같은 방학의 시기의 강화도의 어느 기숙학교.
몸과 마음이 지친 채로 편할리 없는 낯선 공간에서 시원할 리가 없는 수박을 먹기 위해 사제동행캠프를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것이 아님을 모든 수련회를 경험해 본 기독교사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부름(Calling)을 시작하는 이유가 온 마음으로 전해져 온다.
서서히 닳아 없어진 숭덕학원을 향한 부르심과, 무수히 많이 깨어진 관계로부터 오는 상한 마음들이 선생님들을 겨우 하루 살아내기에 급급한 삶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여고에 넘어온 지 고작 1년 만에 나 또한 도망갈 궁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20년을 버티셨던 체육 선생님도 비슷한 마음이실 듯하다. 그 깨어진 마음을 다시 이어 붙이고자 하시는 마음이 선명히 전해온다. 그렇게 다시 서로의 마음을 감싸 안을 수 있도록, 옅어 투명해진 마음에 다시 색깔을 입힐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보자고 말씀하시는 간절한 온기가 느껴진다.
가장 먼저는 학생들을 위한 시간이겠지만, 이어서는 교사들을 위한 시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1급 정교사 자격연수가 사제동행캠프와 정면으로 겹칠 것 같다. 2박 3일 정도는 연수를 쉬어도, 수료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족. 여전히 마음 두지 못하고 각을 잡은 채 서서 '그저 오늘도 더 배우겠습니다. 알려주세요!'라고만 앵무새처럼 말하는 나에게 20년간 한 학교에 머무르시던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조언하신다. 사람들에게 묻는 대신에 하나님께 '오늘은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시나요? 제게 무엇을 가르치실 마음이셔요?'라고 물어보면서 하루하루를 쌓아볼 것을 말씀하신다.
사족. 2 코로나19 이후 새로 오신 목사님은 교사를 상대로 한 상담이 무척 큰 업무의 부분을 차지하신다. 사제동행캠프 또한 학생들을 위한 시간이 되겠지만, 그 와중에도 선생님들의 마음 마음들을 살피시려는 마음이 전해진다. 이 마음이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로가 가득하다. 숭덕학원에 도착한 지 2년이 되어서야, 마음 둘 곳을 찾은 듯하다. 그리고, 그래서 더 속상하다.
나는 친구가 생기면 1년 안에 꼭 헤어지게 된다.
1)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남주 역.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죽어서는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