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처음이었다.
이곳에 남아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처음이었다.
21학년도 3월, 인천의 한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20학년도에 머물렀던 곳에서도 모든 선생님이 한 교무실에서 생활하였고, 서로의 어려움을 눈으로 보며 응원하는 1년을 보내었다. 그와 같이 21학년도에서의 삶도 선생님들의 따뜻함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22학년도 3월, 같은 법인의 고등학교로 다시 인사발령을 받았다. 4년간 4곳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4곳의 큰 교무실과, 6곳의 작은 교무실로 이루어진 학교였고, 각 층에서는 따뜻함이 넘쳐흘렀지만, 서로의 삶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소통은 당연히 단절되었고, 오해는 계속 쌓였다. 1층의 이야기가 왜곡되어 2,3,4층으로 전해지고, 2,3,4층의 어려움은 1층까지 닿지 못했다.
그렇게 각자의 어려움과 생각들이 전해지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흘러 모든 선생님에게는 상처가 가득히 남아있었다. 나 또한 주변의 선생님들처럼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21학년도 3월부터, 아니 20년 10월 인사이동을 통보받은 그때부터 '어떻게든 다시...!'라는 마음이 늘 있었다.
처음이었다.
선생님들의 마음 속 간절함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느꼈던 것이 처음이었다.
학교 리더십 주관의 기도모임은 매주 있었다. 위로부터의 기도모임이 아니라 '자발적인 헌신의 마음을 표현하신 분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모으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의 고작 3분의 기도였다. 그저 교제를 위한 자리였음에도 그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기에는 충분했다. 사제동행캠프를 준비하는 선생님 20여 분의 선생님들 중, 14명의 선생님이 먼저 모여 함께 식사하며 사제동행캠프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졌다.
벌써 마음에 기대함이 넘쳐흐른다. 7월 19, 20, 21일. 이곳의 선생님들과 함께할 2박 3일이 기대가 된다. 함께 있을 1급 정교사 연수보다 20000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