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나무 아래서

다시는 오지 않을, 올해 만의 사제 동행 캠프

꿈잣는이 2023. 7. 27. 22:24

사제동행 캠프 핸드북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편 25편 4절 말씀)

 

를 주제로 사제동행 캠프가 시작되었다.

 

사제동행 캠프를 시작할 때의 마음은 아랫글에서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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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필요해요.1)

일찍 퇴근하기로 나 스스로와 약속한 날이었지만, 또 21시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길, 1학년 체육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송내역까지 가게 되었다. 체육 선생님께서는 목사님과 함께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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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필요해요. 나와 함께 숭덕여고에 속상한 마음을 쌓아두고 있을 당신에게, "함께하며 위로를 쌓아내요."라는 초청에 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준비를 시작하자, 그 과정은 전혀 쉽지 않았다. 학교 자율적 교육과정으로 진행된 수학+영어 융합 수업도 내가 거의 다 떠안았다. 여기에 사제동행 캠프의 준비로 행정 + 재정 + 물놀이 + 조 담당 네 영역을 감당했고, 대외비로 '보이는 라디오'까지 함께 준비하였다.

 

평생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학기 말을 보내었다. 무려 두 달의 여름 방학을 앞두고 아무 준비를 하지 못한 채 방학을 맞이했다. 생기부를 쓰지 못했던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생기부를 쓸 자료를 다 받아오지 못했다. 학기 중에 제출받았던 자료들은 전부 집으로 가져왔지만, 학기말에 나누어주었던 자료들은 충분히 회수해내지 못했다. 정기고사를 위해 돌려주었던 필기자료들도 고작 4명에게만 돌려받았다. 겨우 아이들에게 성적표와 학부모 편지를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의 방학 계획이 무엇인지, 어떠한 삶을 보낼 예정인지 단 한 명의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사제동행 캠프를 가는 담임 반 친구는 고작 2명이었다.

캠프를 가지 않은 채 남겨진 22명을 그대로 방치해 둔 채,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무 준비없이, 나는 방학을 맞이했다. (그리고 사제동행캠프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1정 연수를 시작했다.)

내년엔 올해처럼 캠프를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조 상황은 두려움이 나를 감쌌다. 8명이 한 조였는데, 교회를 다녔던 친구는 2명이었다. 유치원생까지 교회를 다녔던 친구도 한 명 있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친구가 과반을 넘는 조 편성이었다.

조 편성을 보며, 한 가지 마음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 이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복음을 알릴 수 있을까.

 

사제동행 캠프를 준비하는 시간은 어려움이 가득했다. 마치 어둠의 권세들이 억지로 억지로 캠프를 방해하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이 마음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이 반전되었다.

 


 

준비 기간은 모든 선생님이 한결같이 바쁘셨기에 그들의 마음 씀을 단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모든 시간과 마음을 캠프에 쏟으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참 귀하고 감사했다. 도와주세요.? 를 외치지 않아도 먼저 찾아와 도와주시는 그 손길이 참 따스했다.

 

조 아이들의 태도와 마음에 나의 마음은 더욱 따뜻했다. 출발 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마음들은 기우(杞憂)였다.

 

수련회 때 맨 앞자리에 앉지 않은 기억이 없다.(있기는 할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나를 따라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맨 앞자리를 어려워하지 않게 앉아주고, 깨워도 깨워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있어 주었다. 다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해 주려고 애써주었다.

그것만으로 내 안에 감동이 넘쳤다.

 

이들은 왜 마음의 문을 열었을까. (물론 그것이 `왜 그들은 복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걸까?` 와는 다른 질문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의 가르침과 논리가 엄청났던가? 그럴 리가 없다. 공간이 좋았을까? 그냥 평범한 학교 기숙사에 체육관을 빌렸을 뿐이었다. 프로그램이 좋았을까? 물놀이를 기획한 사람으로서 절대 No! 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저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무척 주관적인 생각에) 찬양과 기도의 시간이 무척 무척 짧았지만, 아주 오랜만에 가져보는 뜨거운 시간이었다. 기윤실 교사 모임 수련회를 제외하고는 수련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 졸업과 군 입대 이후 없었던 듯하다. (즉, 16년부터 약 7년간 없었다.)

캠프파이어 대신 LED 캔들 파이어. 11시까지 종료될 예정의 프로그램이었는데 11시에 시작하고 말았다. 결국 둘쨋날 프로그램은 자정에야 마쳤다.

 

기도 시간, 계속해서 들었던 마음이 두 가지가 있었다.

 

요한복음 3장 26절~30절 말씀 / 세례 요한 할아버지의 겸손함.
26.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7.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28.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아이들의 삶이 흥하였으면 좋겠다. 나의 삶은 쇠하더라도 기쁨이 가득할 것인데. 그렇게 나의 삶보다 이들의 삶이 더욱 나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랑이 쌓여,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 숭덕여고에 임하면 좋겠다. 교칙과 초중등교육법, 학생인권조례가 통치하는 숭덕여고가 아니라, 오직 사랑의 법만이 숭덕여고의 유일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위러브가 올해 7월에 발표한 곡이 예배 곡으로 사용되었다.1) 그 고백들이 모두 숭덕여고에 임하면 좋겠다.

주의 이름 권능 선포할 때
그의 나라 여기 임하시네
작은 마음 모여 이 순간을 기다렸으니
우리의 가슴 깊이 말씀하소서
시간이 흘러간대도 단 하나 변치 않는
세상이 비웃는대도 영원히 반짝이는
내 마음 부서진대도 붙들을 가치 있는 그 이름

나랑 별보러 가지 않을래 보이는 라디오 프로그램

 

 


 

사제동행 캠프를 돌아보며

처음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어떻게 이토록 따뜻한 캠프가 될 수 있었을까, 굳이 인간적인 생각들을 끼워 넣어보았다.

선생님들의 헌신을 학생들이 끊임없이 두 눈으로 직관하며, 그들의 마음이 자연스레 열렸던 것은 아닐까.

 

 

사제동행 캠프의 핵심은 교사가 캠프를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랑 별보러가지 않을래 보이는 라디오의 마지막 순서. 들국화의 「축복합니다」를 함께 부르며 앞으로 함께할 시간들을 축복하고 있다.

 


 

둘째 날 밤을 보내며 선생님들과 행복한 교제의 시간을 보내다, 아이들과 40분가량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나의 조 아이들 네 명과 그들의 친구들 셋이 한 방에 모여서 기독교에 관한 질문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일곱 명 중 두 명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믿지 않는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충분한 대답이 어려워하고 있기에, 나도 동참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나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토론을 벌이는 건 마음 편하게 해낼 수 있겠지만, 그 질문들을 선생님께 가지고 나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질문들을 가지고 나오기로 결정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학생들과 허물없이 토론할 수 있는 나이는 과연 몇 살까지 일까? 일단 만 30살은 가능한 듯하다. 조금은 더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학교를 떠나는 그 해까지, 나라는 사람이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어른이면 좋겠다.

 

그렇게 학생들과의 토론을 마치고서는 다시 선생님들과 새벽을 함께 했다.

내일의 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분도 계셨고, 내년 사제동행을 약속할 수 없는 선생님도 계셨다.

올해가 마지막 사제동행 캠프가 되실 선생님도 계셨다.

이토록 행복한 시간이었던 사제동행 캠프인데, 내년에도 이어질 사제동행 캠프가 올해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조금 많이 속상하다. 사제동행 캠프의 핵심은 '교사가 캠프를 준비하는 것'일텐데, 내년의 캠프에서도 이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년의 사제동행 캠프를 위해 기도를 시작해야 하겠다.

 

 

 

 

미주.
1) 위러브. (2023). 6번 수록곡 「찬양하라」. 『Run to the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