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사역하시던 한 선교사님께서 케냐로의 출국 당일, 우리 학교 예배에 말씀을 전해주시러 오셨다.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의 친 형이 아프리카 케냐 선교사님으로 계시고, 약 일 년간 첫 안식년을 보내시다 오늘 날짜로 출국하시는 일정이셨다. 감사하게도 올해 말씀을 전해주실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었다.) 학교 화요 채플의 매 예배가 은혜 가득한 시간이지만, 특별히 오늘의 말씀은 마치 내게 생일 선물과도 같았다.
요한복음 13장 1절~5절.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설교해주셨다.
사범대학에 입학한 뒤, 교사가 되어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 '학생들의 발을 씻어주기'가 있었다. 하지만 여지껏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여학교에 근무하니 아마 앞으로도 힘들지 않을까?
"사랑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랑을 표현할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만큼 재미있으시면서도 삶에서의 통찰력이 무척 큰 분이심이 짧은 말씀을 들으며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기독교는 사랑이다.", "기독교 학교에 사랑이 없으면 무엇이 남을까?"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에 위로와 도전이 많이 되었다.
다만, 내가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데까지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사랑을 실천하기 무척 어렵다. 선교지에서의 선교사님이라고 어떻게 다르지 않을까. 배신과 실의가 가득한 그곳에서 "끝까지" 사랑하기를 애쓰시려는 모습에 다시 한 번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고3 2학기의 시작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왔던 '학교'의 개념과 너무나 달랐다. 1년 있던 중학교 또한 3학년 전환기 교육을 경험하지 못했었고, 그 외의 시간들도 모두 고등학교 2학년 위주의 삶이었던 내게 지금의 시기는 너무나 생소하다. 대입과 수능 앞에 선 아이들에게 정상적인 수업도, 일상적인 학사일정도, 평범한 대화도 점차 소멸되고 있었다. 마치 2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뒤, 진급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성적 처리를 기다리며 생기부를 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같았다.
매일 변하는 아이들의 수업 태도에 매일 적응하기가 힘든 와중에, 20대 초반의 선교단체 예수전도단을 통해 배웠던 표현이 떠올랐다.
"관계 안에서 상처받기로 결정하십시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셨듯이."
관계 안에서 상처받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이 하나 전제되어야 한다. 기대하는 것이 있어야만 상처를 받게 된다. 사랑하고, 그렇게 베푼 사랑에 대한 답을 기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처가 점점 쌓여간다. '내가 몇번을 말했는데!'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서 상처가 생겨난다.
그렇게 상한 마음이 올라옴과 동시에, 다른 한 가지 마음도 함께 올라온다.
"관계 안에서 상처받는 것까지도 사랑이겠다."
기대가 쌓였기에 상처가 생겨나는 것일테니까.
그렇게 케냐 선교사님 또한 먼저 사랑하시고, 관계 안에서 상처받으시는 과정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계셨다.
그렇게 오늘도 한 학부모님과 두 시간 가까이 상담을 진행하고(덕분에 선교부 수련회는 또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 퇴근을 하려는데, 옆 옆자리 선생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생일 선물을 주고 가셨다. (선물을 참 많이 받는 오늘이다! 점심때는 학년 부장님께 아이 기저귀를 선물로 받았다.) "오늘 황 선교사님 말씀을 듣는데, 우리 학교에 사랑을 표현하는 선생님은 선생님 한 분 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우리 학교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네...' 라고 생각했었다... 역시 사랑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사랑넘치는 사람들만 보이고, 나처럼 사랑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 없음만 보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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