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33

평생 첫, 그리고 앞으로 매해 만들 수 있길 소망하는 학급 문집

평생 처음으로, 학급 문집을 만들었다. 12년 나의 학교생활동안 단 한 번, 초등학교 학급 문집을 만든 적이 있다. 그 때에는 모든 과정을 담임선생님이 주관해서 만들어주셨다. 나는 제작되고 있는지도 몰랐고, 누군가 제출했던 글들만 묶여 학급 문집이 되었다. 나와 관련있는 지면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저 우리반만을 위한 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문집을 결혼 후에도 부모님 집에 잘 모셔두고 있었다. (지금은 부모님도 이사가시며 내 방을 모두 처분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되기로 다짐한 뒤, 학급운영 연수를 들으며 다시금 학급 문집의 소식을 들었다. 학급 문집은 그저 학년말에 '만들어야지~' 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1년간의 자료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묶여있어야..

학생들에게 배우는 직업 : 교사.

생기부를 써 내려가면서, 해마다 한 명 이상은 보게 되는 듯하다. 2022학년도를 한 달 남짓 남긴 1월 31일, 나는 익명의 학생에게서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저. 1906.), 그리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저. 2007.) 독후감 두 편을 받았다. 자율활동에 '슬기로운 독서생활'이라는 활동으로 생기부에 기입할 내용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독후감을 읽으며, '와, 이 학생은 이런 생각과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을 갖는 그날 하루 종일이었다. 자율활동, 행동특성종합의견, 그리고 진로활동까지 해내야 할 생기부가 너무 많았는데, 하루종일 먹먹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더보기22학년도의 그 학생은 학급에서 맡은 역할도 컸다. 왜인지 이 학생과 ..

다섯 번째 편지, 행동특성 종합의견

올해는 특히나 더 편지를 많이 쓴 듯하다. 23년 4월, 부활절을 맞아 부활절 편지를 썼다.생일마다 아이들에게 생일 편지를 썼다.성탄절에는 약속의 말씀과 함께 성탄 편지를 썼다.종업식에는 이별 편지를 썼다.더보기생일 편지와 성탄절은 각자에게 모두 다른 편지를 썼고, 부활절과 종업식에는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썼다.그리고, 2월에는 마지막 편지를 생활기록부에 남겼다.  띄어쓰기 포함 500자 이내의 행동특성 종합의견을 썼다. 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는 "학생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학급담임교사가 문장으로 입력하여 학생에 대한 일종의 추천서 또는 지도 자료가 되도록 작성한다."라고 명시한다. 기재요령에서부터 "추천서"로 종합의견을 쓸 것을 명시해 두었다. 진학지도와 연계된 생활기록부 기재 연수를 들을 때마다..

꽃과 함께한 23학년도 졸업식.

2월 1일 졸업식이 있던 날, 한 졸업생이 나에게 꽃을 주었다. 2022학년도에 같은 학년으로 일 년간 함께 하였던 학생이 나에게 꽃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담임 반 학생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나의 수업을 들은 학생도 아니었다. 어떠한 마음으로 이 꽃을 주었을까. 꽃을 건네던 2월 1일 아침 8시, 그 학생의 이야기가 여전히 어렴풋이 기억에 머무른다. "졸업 하기 전까지 저에게 사탕 하나 받지 않으셨지만, 이 꽃은 그럴 수 없으시겠지요? 이제 제가 졸업했으니까요!"더보기엄밀하게는 졸업식 당일까지는 학적이 학교에 남아있긴 하니, 2월 2일부터 김영란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엄밀하게 따져본다면, 22학년도 때부터 사탕을 받아도 어떠한 위법사항이 없었다. 이 학생에게는 22학년도에..

어느때보다 추웠지만, 어느때보다 따뜻했던 학교에서의 성탄절

내가 담임을 맡은 반이 수학여행 CCD 경연대회에서도 1등을 했는데, 성탄예배의 하모니제(성가 경연대회)에서도 1등을 했다. 과학탐구 활동으로, 혹은 자연계열 고유한 성향으로, 학급 간의 경쟁이 유발되는 경연대회에서 높은 등위를 갖는 것이 흔치는 않았기에 더 의외였다. 그리고 기뻤다. 예선 때 우리 학급을 보셨던 음악 선생님께서는 '이과스럽게 한 음 한 음 연습한 것이 너무 잘 느껴진다'고도하셨다. (아프리카 기도문으로 시작한 원곡의 방향성과는 또 다른 해석을 치러낸 11반이라 하셨다.) 지난 수학여행 CCD 경연 때에도 파트별로 무수히 많은 연습을 쌓아 올려 결국은 1등을 해내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세어보니, 이제 5년 차 교사이고, 벌써 네 번째 담임 학급을 맡았다. 매 성탄절마다, 무언가를 했다. ..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 2024 수능 감독관 후기

2024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을 치렀다. 2011학년도에 처음이자 마지막 수험생으로의 수능 이후, 2022, 2023, 2024 세 번의 고사실 감독관으로 수능을 치렀다. 수험생 자격까지 포함해서 벌써 네 번째 수능이었다.  첫 감독은 원인재역 근처의 연수 고등학교, 두 번째에는 백운역 근처의 상정고등학교, 올해는 인천 논현역의 송천고등학교였다. 연수고등학교에서는 과학탐구를 선택한 남학생들이 모였고, 상정고등학교는 특성화고 남학생들이 모였다. 송천고등학교는 과학탐구를 선택한 남학생 중, 제2 외국어 / 한문을 응시하는 학생들이 주로 모여서 수능을 응시하는 학교였다. 따라서 송천고등학교는 21개 시험실 중 11곳에서 5교시 제2 외국어 영역 시험도 진행되었다. 나는 수능 감독관 중에서도 무척 젊은 편이었기..

세 번째 학업 중단

2020학년도에 처음 학급 담임을 맡은 이후로, 11월 2일 부로 세 번째 학업 중단 학생을 맞았다. 이미 스물한 살이 된 첫 번째 친구와 같은 이유로 이번 친구도 자퇴했다. 자퇴 사유는 정시 준비이다. 수행평가, 정기고사, 또한 무수히 많은 교내 행사들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수능 준비에 마음과 시간을 쏟아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모의고사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고 있고, 다른 친구들과 달리 수행평가나 지필평가, 교내 행사와 동아리 활동은 분명, 수능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은 자명하다. 정시를 준비하는 사람.해외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신체적, 정서적 이슈로 인하여 장기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 외의 자퇴는 모두 막고 싶다.마음 같아서는 정..

무엇을 소망하는 교사여야 할까?

2023학년도 2학년 진로진학캠프가 11월 말에 진행된다. 이 진로진학 캠프를 앞두고 많은 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지는 '그래서 지금의 내 내신으로는 어느 정도의 대학교를 갈 수 있나요? 성적이 오르면 / 떨어지면 어느 정도의 대학을 가게 되는 걸까요?'였다. 다양한 입시 관련 연수를 들으며 배웠던 사실을 학생들에게 안내한다. 내신 등급 평균 2.XX는 서울 지역의 학교를 아슬아슬하게 입학할 수 있고, 내신 등급 평균 3.XX는 수도권 지역의 학교를 아슬아슬하게 입학할 수 있다. 그럼 내신 등급 평균이 4점을 넘어서는 친구들은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걸까. 내가 경험한 연수의 자리에서, 내신 등급 4점대 이후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신 등급 평균 3..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수학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요청하는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20분 가까이의 긴 말씀을 전해주셨다. 수학의 가치는 20분으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을 것이 확실하지만,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전해지는 진정성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수학은 무척 아름답고, 또 인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학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등 교육과정(중학교 3년 + 고등학교 3년)에서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수학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누렸으면 좋겠다. 교수님은 아래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수학을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안내해 주셨다. 강연 처음부터 교수님께서는 다정한 물리학자라는 수식어가..

김상욱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셨던 한 마디 : 미안해요.

중등 수학과 1급 정교사 자격 연수에서 김상욱 교수님을 초청하여 강연을 들었다. 인천 1정 연수 중, 국어, 영어, 수학 선생님이 함께 강연을 듣는 시간이었다. 15분 정도 책의 배경과 집필 이유 등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듣고, 이후 문학 평론가 허희 님과 함께 북토크 형식으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김상욱 교수님께서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셨다. 모든 질문과 답변의 내용을 담기 어려워,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의 조각을 모아보았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가지 이야기.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다. 7~80년대 학력고사 시절보다 더욱 끔찍해진 대입 환경을 보며 속상하고, 또 미안해하셨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이었고, 어른들의 가치관이 결국 우리나라 입시의 현실을 이렇게 ..

담임 반 아이들 모두와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것 또한 축복이고 감사함이겠다.

개학 직후 수학여행이 진행되어야 하기에, 시험을 마치자마자 학교는 분주하게 수학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학교는 시험을 마치는 날에 수학여행 참가 학부모 동의서를 보내고, 이틀 뒤에 학생들로부터 동의서를 마감하여 신청 인원 결재절차를 진행했다. 역시 우리 반은 출석 인정 결석과 신청서를 놓고 온 아이들이 충만(?)했고, 일단 참가 인원 보고만 먼저 진행했다. 재적 인원 24명 중에서 24명이 참석이었다. 첫 수학여행이다. 15년 전 내가 고1 때 다녀왔던 수학여행 이후로 학교에서 진행하는 숙박형 체험학습은 처음이다. (여름방학 곧, 사제동행 캠프를 다녀오기는 할 테지만) 15년 전만 해도, 수학여행은 정말 '모두'가 다녀와야 하는 여행이었다. 한 학년 전체에 한, 두 명만 여행 대신 등교 수업을 택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