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무엇을 소망하는 교사여야 할까?

꿈잣는이 2023. 11. 5. 23:33

 

Prince Ea. I SUED THE SCHOOL SYSTEM. (https://youtu.be/dqTTojTija8?si=fmLdCKM2Dm3aqfel)

 

 

2023학년도 2학년 진로진학캠프가 11월 말에 진행된다. 이 진로진학 캠프를 앞두고 많은 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지는 '그래서 지금의 내 내신으로는 어느 정도의 대학교를 갈 수 있나요? 성적이 오르면 / 떨어지면 어느 정도의 대학을 가게 되는 걸까요?'였다.

 

다양한 입시 관련 연수를 들으며 배웠던 사실을 학생들에게 안내한다. 내신 등급 평균 2.XX는 서울 지역의 학교를 아슬아슬하게 입학할 수 있고, 내신 등급 평균 3.XX는 수도권 지역의 학교를 아슬아슬하게 입학할 수 있다. 그럼 내신 등급 평균이 4점을 넘어서는 친구들은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걸까. 내가 경험한 연수의 자리에서, 내신 등급 4점대 이후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신 등급 평균 3점대 친구들은 대략적으로 상위 23% 이내의 학생들이다. 즉, 271명 중에 62명까지 내신 등급 3점대를 받는다.

더보기

(한 과목만 가지고 성적을 매기지 않기에 분명한 오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경험적인 결과로 보통, 3점대 학생들은 실제로 20%내외의 학생들이 구성된다.)

 

그럼 나머지 200명은 어떻게 되는걸까. 나는 아직 이 200명의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 2, 3년제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지방의 대학교로 진학하거나, 상급 학교로의 진학을 단념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교무실에서 몇 선생님들에게 전해 들었지만, 공식적인 연수의 자리에서 배워본 적이 없다. 왜 우리는 상위 20%의 학생들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또 그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더보기

(수학 시험 기준, 고2 학력평가에서 4등급 이내 친구들은 50점 이하의 성적을 받는다. 대학 수학 능력에 못 미치는 학생들이 학사 과정을 배워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이 물론 있을 수 있겠다. 지금도 도함수의 활용과 정사영, 벡터의 연산은 참 어려운 과목이고, 어려워하는 학생들도 많겠다. 지금의 논지와는 맞지 않으니, 기회가 닿을 때 다루어보자.)

 

200명의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떻게 해서든지 등급 평균을 3.99보다 낮게 만들어야 해!"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일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기까지 2년만 더 참으면 고등학교에서도 대부분의 평가가 절대평가로 바뀔 예정이었다. (비록 2028 대입 시안만 봐서는 실패했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평가가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나는 조금은 더 기쁘게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까?

 

2021학년도에 1년간 중학교를 경험했다. 일반계 고등학교가 평준화되고, 중학교의 평가가 성취평가제(절대평가)가 되며, 중학교의 교육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부터 참 많은 전환점을 맞았다. 입시를 위한 수업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의 자율적 교육과정 편성에 의한 수업이 중학교에서는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아니,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자유학년제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은 학습 대신 다양한 활동들 체험하고, 평가 대신 쉼을 얻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유학년제를 더욱 빠른 선행학습의 발판으로 삼았다. 자유학년제 덕분에 교육 격차는 중1부터 벌어졌다. 어느 중3은 나머지 정리, 혹은 미분법을 공부하고 있고, 어느 중3은 무리수와 유리수를 구분하지 못했다.

 

넋두리처럼 이야기한다. "수능에서 영어가 아니라 수학이 절대평가였다면, 우리의 일상이 조금 달랐을까요?" 하지만 이 방향성 또한 조금 다를 것 같다. 경쟁이 수학에서 영어로 흘러갈 뿐이겠고, 스타강사가 수학 교사가 아니라 영어 교사가 되었을 뿐이겠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소망하여야 할까.

 

대입과 교육을 독립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일까? 나는 대입과 교육의 독립을 소망하여야 할까?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는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가 깨어지면 교육에도 봄이 올까? 그렇다면 점차 견고해지는 의사 만능주의는 어떻게 될까?

 

중학교의 성취평가제가 고등학교로 올라오면, 고등학교의 교실도 아름다워질까? 중학교 교실을 살짝 엿보면, 마냥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똑같은 음식을 똑같은 분량만큼 먹고 똑같은 운동을 해도, 누군가는 살이 오히려 찌고, 누군가는 살이 빠진다. 모든 사람의 삶이 다르니, 하나의 답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4등급의 학생과 6등급, 8등급의 학생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등급 평균을 3.99보다 낮게 만들어야 해!"라는 공통의 해법을 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글쓰기 SNS에 나를 소개할 때, "기독교 사립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칩니다. 목화에서 실을 자아내듯 뭉게구름 같이 피어나는 아이들의 꿈을 잣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학이 그들의 꿈을 발목 잡지 않도록 애씁니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 영혼, 한 영혼의 삶이 모두 소중하다. 그 영혼들이 지닌 그 이야기들이 모두 귀하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그저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과 계획이 되도록 애쓰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소망을 가져야 할까.

 

더보기

사족.

 

여전히 고민이 가득하다.

 

지금의 수많은 문제상황 속에 갇힌 채, '일단, 그저 내가 하고싶은 교육을 먼저 할래!'가 되고 싶지는 않다.

 

기윤실 교사모임 / 좋은 교사 운동 / 교육의 봄의 가르침과, 학교 선생님들의 위로는 무척 큰 위로가 된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 설명할 수 없지만, 여하튼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