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꿈잣는이 2023. 8. 8. 17:30

2023.8.4.(금) 김상욱 교수님의 강연. 문학평론가 허희 님과 함께 북토크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수학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요청하는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20분 가까이의 긴 말씀을 전해주셨다. 수학의 가치는 20분으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을 것이 확실하지만, 교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전해지는 진정성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수학은 무척 아름답고, 또 인간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학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등 교육과정(중학교 3년 + 고등학교 3년)에서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수학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누렸으면 좋겠다.
 
교수님은 아래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 수학을 붙잡고 있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안내해 주셨다. 강연 처음부터 교수님께서는 다정한 물리학자라는 수식어가 오해가 많이 담긴 표현이라 말씀하셨는데, 강연을 듣는 내내 공감이 많이 되었다. 순수과학의 특성상 긍정과 부정이 무 잘리듯 분명하게 드러나는 학문의 성격을 그대로 안고 계시는 분이셨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는 입장을 취하고 계시는 듯하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수 없는 대한민국의 수학 교육적 구조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수학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만큼은 칼 같은 입장을 가지신다.
 
 
1. 이공계열 대학을 진학하게 되는 경우, 고등학교 과정까지 배웠던 수학은 모든 영역에 바로 활용된다.

 

즉, 고등학교 수학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어야 대학교에서 공부를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물론 그 의미가 모든 공식을 외우고 수학적 성질을 100% 이해하고 있어야만 하고 수능 수학 영역 30번 문제를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추론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부 공부를 하게 되면 기억나지 않는 부분들을 활용해야 할 때, 이전의 전공 교재들을 찾아보며 그 성질, 증명, 혹은 공식들을 찾아보게 된다. 무엇을 배웠고, 이것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리된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수능 수학 영역의 표준점수가 다른 어떤 과목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와 같은 무척 현실적인 이유까지는 아니지만, 피부에 와닿는 실제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더 많은 물음이 이어지게 된다. 이공계열 대학을 진학하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지금의 수학 공부 당위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운동을 하는 친구들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거나, 심리학, 혹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공간도형은 어떠한 배움의 의미가 있을까? 물론 벡터와 행렬, 미적분 등 각 영역마다 학습이 선행되어야 하는 전공이 분명 존재한다. 필수적인 영역의 수학은 대학교에서도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그렇다면, 이공계열로의 대학을 진학한 학생들 또한 대학교에서 그 공부들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실제로 대학교 1학년 과정에서 주로 배우는 CALCULUS 과목의 교재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다루었던 수학 내용을 대부분 다루고 있다. 지수함수, 로그함수, 삼각함수, 수열과 급수, 기초적인 개념의 극한과 미적분, 이차곡선, 벡터, 공간에서의 좌표계 등등 고등학교에서 다루는 내용 대부분을 다루고 있다.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은 대입의 끝이라는 해방감에 1학년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고, 1학년 때 배우는 내용들을 대충 다루게 된다. 물론, 그렇게 해도 괜찮다. 이미 고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들이 대부분이고, 그 외에 추가된 벡터 미적분, 이중적분 등의 내용만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로 공부해도 1학년 학점은 A+를 받을 수 있다. 대학교 1학년 필수 교양(혹은 대학에 따라 전공)의 물리학(PHYSICS)의 경우도 비슷했다. 고등학교 물리 I, 물리 II에서 배우는 내용 +a의 수준이었고, 새로 추가된 부분만 조금 바짝 공부하면 충분히 A+를 받을 수 있는 교과목이다. (화학, 생명과학의 경우는 배워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대학교에서 공부해도 되는 부분을 고등학교 과정에서 미리 배우고 있어 왔던 것은 아닐까. 이차곡선과 벡터, 공간도형, 공간좌표가 수능 필수 과목에서 빠질 때, 많은 이공계열 교수님들이 우려를 표했다. 이미 교육과정에서 빠진 것들이 너무 많아 학생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대학에 올라온다고 여기는 교수님들은 '이제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대학에 입학하겠다'라고 우려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고카페인 에너지 음료로 신체와 정신을 파괴해 가며 대학교 1학년에서 배우는 내용을 지금 완성해야만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3년 동안 몰아서 공부하고 대학교 1학년을 쉬엄쉬엄 다닐 바엔, 대학교 1학년 때의 공부를 조금 더 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 언어로 표현된 논리는 곳곳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을 활용하면 논리로부터의 오류에 대해서만큼은 온전히 자유롭다.

 

예시를 들어보자.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와 같이 언어로 표현된 문장은 오류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위 세 문장은 완벽해 보인다고? 주어와 술어만 있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문장이기 때문에 오류를 확인하기가 쉽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는 다양한 문장 성분이 들어간다. 아래 문장도 살펴보자.

연필이 나무가 될 때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참인 문장일까, 거짓인 문장일까? 가정과 결론을 분리하는 것부터 어렵다. 어디까지가 가정이고, 어디까지가 결론일까?
 
이것을 수학(형식 논리학)은 놀랍도록 간단하게 풀어낸다.

A = B이고, B = C이다. 따라서 A = C이다.
p가 q이면, r이다.

 
물리학의 연구들이 정립 과정에서 다양한 비판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다윈의 진화론에 이어, 다양한 진화 관련 이론(혹은 가설) 들은 그 과정에 많은 비판을 받는다.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실험을 설계하고 진행하며, 이를 통해 연역적인 결론을 맺는 모든 과정에서 비판의 여지가 생겨난다. 하지만 물리학의 많은 연구들은 이와 같은 비판에서 보다 자유롭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자유낙하하는 공의 속도는 0.5gt^2인데, 이를 시간에 대해 미분하면 gt라는 식을 등장하게 되고, 이는 자유낙하하는 공의 가속도가 된다. 물리에서 다루는 모든 상호작용을 모두 수학적으로 옮겨서 표현한다. 수식은 이미 논리적이니, 이 과정에서 논리적 오류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3. 우주 또한 참 논리적인 공간이다.

우리의 인지능력과 관측능력이 충분하지 못하여 나의 인지 능력 상, 이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일단 교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받아들이고 가자.
 
 

  • 수학과 과학이 이루어낸 것들

이렇게 세 당위성을 설명해주시면서 현대 사회의 수학과 과학의 위상을 안내해 주셨다. 과학에서 다루는 연역적 탐구 방법이 거의 모든 학문에서 활용되고, 수학이 가지는 연역 논증은 새로운 이론의 필연성을 보장한다. (과학에서의 연역적 탐구 방법의 '연역'과, 수학에서의 연역 논증의 '연역'은 같은 단어이지만 그 논리 전개 방법이 전혀 다르다. 전혀!) 특별히 수학에서의 연역 논증은 논리적인 오류가 없을 수밖에 없는 논증 방법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문들(사회과학에서 인문학까지)에서도 폭넓게 활용된다. 어느 전공이든 연구방법론의 부분에서 연역적 탐구 방법은 반드시 배우게 된다. 
 
이렇게 쌓아올린 학문의 체계의 대부분은 서양에서 비롯되었다. 16세기부터 시작된 합리주의와 이어진 계몽주의에서 수학적인 방법으로 논리 정연하게 학문의 업적들을 쌓아 올렸다. 설명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 혹은 악마의 저주라고 불렸던 것들을 하나씩 설명해 내면서 수학과 과학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졌다. 논리적인 오류의 위험성, 그리고 다양한 비판점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채 학문이 쌓여가는 모습을 보여주자 다른 학문들도 점차 과학의 연역적 탐구 방법과 연역 논증의 방법을 활용하게 되었다. 20세기가 되어가며 수학과 과학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대부분의 진리를 규명해 낸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점차 수학과 과학은 다른 모든 영역까지 수학과 과학으로 표현해 내고자 노력해 왔다. 교수님께서는 에드워드 윌슨(E. O. Wilson)(1998). 의 『통섭(Consilience)』이라는 책으로 각 영역의 학문이 세상 모든 것을 규명해 내기 위한 애씀을 사례로 들어주셨다. (수학은 쿠르트 괴델의 증명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다른 자연과학은 어떠할까? 김상욱 교수님의 결론은 각 학문의 영역이 그것들이 다루고 있는 층위(Scale)의 내용은 거의 모든 진리를 탐구할 수 있겠지만, 원자에서부터 분자, 생명체, 인간, 인간사회, 우주. 모든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학문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신다.)
 
수학과 과학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계몽주의를 통해 우리의 세상은 큰 발전을 이룬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아직 동양은 아직 이 합리주의가 세계관의 근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아직 토착 신앙 등의 힘을 빌리는 모습들을 통해 대한민국은 아직 합리주의가 세계관의 근간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교수님의 대중적인 활동의 시작도 그러한 방향성이라고 하셨다. 11년도부터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리고 합리적인 사고를 일상에서도 해낼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에 칼럼을 쓰고 강연을 다니기 시작하셨다.
 
중고등학생 때 배웠던 내용들을 곰곰히 떠올려보면, 중등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내용들로부터도 충분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물리 I, 물리 II, 화학 I, 화학 II와 같이 어려운 일반 선택과목들을 배워도 좋겠지만, 꼭 그렇게 어려운 공부가 아니어도 괜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탐구 방법론은 고1 수준에서도 다룰 수 있고, 연역 논증 또한 고1 2학기에서 다루고 있다. 배움의 내용만 살펴보면 교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까지 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합리적 사고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이보다는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인 표현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일까. (올여름 우리나라에서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슈들을 보면 이와 같은 생각들만 떠오르게 한다.) 배움의 태도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번 글은 수학 과목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을 대하는 배움의 태도가 변화되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