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을 지을 때마다 '꿈잣는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띄어쓰기가 가능한 닉네임에서는 '꿈 잣는 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별다방에서의 닉네임도 역시 '꿈 잣는 이'다. 유감스럽게도 내 바람과는 달리, 파트너들은 내 닉네임을 부를 때 늘 힘겨워한다. 아무래도 '잣다'라는 단어보다는 '잦다'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기 때문이지 않을까. 꿈이 '잦다'면, 잘 때마다 자주 꿈을 꾼다는 뜻일까? 스타벅스 파트너들이 나를 부를 때마다 다양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잣다`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2번째 의미로 `물레 따위로 섬유에서 실을 뽑다`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목화솜에서 실을 뽑아낼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활용형으로는 `자아`, `자으니` `잣는`이 있다. 활용할 때는 시옷이 사라지는 경우가 더 많아, `잣다`라는 단어를 발견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사절이 오지 않은 나라는 딱 하나, 꿈의 사막이었다. 그곳에는 꿈잣는이들이 살고 있어서 모래로 꿈을 자아 내어 완전한 세계 곳곳에 보낸다고 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꿈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꿈에 실어 보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절을 보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53쪽, 김혜진.(2004). 『아로와 완전한 세계』. 서울 : 바람의 아이들.
`꿈잣는이`라는 표현을 이 책에서 발견했다. 목화솜에서 실을 자아내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모래로 꿈을 자아낸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아, 내 나름의 `꿈 잣는 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꿈이라는 건, 언제나 처음 꾸기 시작할 때는 형체도 흐릿하고 이미지도 희미하다. 실재할 수 있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마치 구름을 잡으려고 애써보았자, 손바닥은 그저 습한 공기만 스칠 뿐인 것과 비슷하다. 이 꿈을 계속 생각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보고 그 구체적인 상황들을 하나씩 살피다 보면 구름처럼 잡히지 않던 꿈은 하나의 큰 방향성이 되고, 세세한 목표가 되며, 곧이어 비전이 된다. 혼자서도 해낼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그 꿈을 살핀다면, 조금은 쉽게 꿈에서 삶의 방향성을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학생들과 함께 있다 보면, 뭉게뭉게 구름과도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자주 본다. 그 아이들의 꿈을 조금은 더 실제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싶다. 그렇게 그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낼 수 있는, 살아낼 수 있는 꿈으로 만들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