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서평

사랑만이 살아있음에 의미를 부여한다.

꿈잣는이 2024. 4. 14. 00:32

밀란 쿤테라. (1984). 이재룡 옮김.(20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지음(知音)의 친구와 함께 책을 읽는다. 여러 다른 고전(古典)들과 같이 성애 묘사가 많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모종의 이유로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가장 먼저 함께 읽게 되었다. 책은 소설이었고, 허구를 기반으로 한다지만 20세기 중반 체코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상황이 잘 드러나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성(姓)에 대한 시대상도 잘 드러난다. 책이 다루는 거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가능한 다루고 싶지 않다.)
 
세 가지 주제로 책을 읽은 감상을 남기고자 한다.
 

1. 좋아 보이게 만들기 쉬운, 무언의 합의를 거스르는 이야기들.
2. 사람마다 가치와 관점은 달라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 한 가지는 꼭 필요하겠다.
3. 규명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한 소고.

 
 


 
1. 좋아 보이게 만들기 쉬운, 무언의 합의를 거스르는 이야기들.
 
사회에서 이해받기 어려운 통념들을 미화하여 '좋아 보이게 만드는' 몇 가지 장치들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문학이라는 이유로 허용하는 여러 표현들과, 생활양식, 가치들이 나의 심기를 계속해서 건드린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 내려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자, 그 모든 요소들이 점차 아무렇지도 않기 시작했다. 인간의 오감 중 가장 민감한 후각은 자극의 역치가 가장 낮다. 어떤 냄새든 금방 그 냄새를 감지하고, 또 금방 무뎌진다. 문화를 인간의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다면, 문화 또한 역치가 대단히 낮은 감각이지 않을까.
 
해야 하는 것들을 하게끔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다. (효를 중시하라는 가르침.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가르침 등등... 교훈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러한 주제의 작품들은 대부분 지루하고, 또 교훈적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며 점차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사회 통념적으로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을 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아내가 있는데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 매일 다른 이성과 잠자리를 갖는 것 등의 이야기는 우리가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무척 가까이에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존재한다.)
 


 
2. 사람마다 가치와 관점은 달라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 한 가지는 꼭 필요하겠다.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명 모두 삶의 양식, 태도, 목적, 가치, 관점 모든 것이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어떠한 가치관, 세계관을 지녔든지 꼭 필요하겠다.
 

"그녀(테레자)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짓을 저지르고 싶었다. 지나간 칠 년을 단번에 지워 버리고 싶었다. 그것은 현기증이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극복할 수 없는 추락 욕구.(같은 책. 2부 28장)

 
 
'추락하고 싶은 욕구'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테레자의 추락하고 싶은 욕구는 프란츠의 귀환으로 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다. 형태와 종류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일으키고, 또 무너져있는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에는 사랑만이 해낼 수 있겠다.
 
 


 
3. 규명하기 어려운 '존재'에 대한 소고(小考)
 
제목에서처럼 규명하기 어렵다. '존재'에 대한 것은. 자연계열 학생들을 만나며, 귀동냥으로 주워 들었다. 생명과학I에서는 생명현상의 특성을 여섯 가지로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생명과학 교과서는 생명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못한다. (대학과정에서도 비슷하다.)
 

세포로 구성될 것
물질대사를 할 것
자극에 대해 반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할 것
발생하고, 생장할 것
생식을 통해 자손에게 형질을 유전할 것
주어진 환경에 적응할 것.

 
우주에는 생명현상이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님도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는 것은 지극히 지구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구분하는 경계라고 말한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는 지구 밖에서의 생명체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Life is a self-sustaining chemical system capable of Darwinian evolution.
https://astrobiology.nasa.gov/research/life-detection/about/)
 



살아있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우주에서, 살아있음에 의미가 부여되는 일은 "사랑" 한 가지이지 않을까.
책의 거의 모든 내용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사랑이라는 주제 하나 만큼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이 우리 모두가 함의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사랑'이 맞다면 말이다.)
 
 
 
 


 
사족.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인 관념 속에서의 사랑과 육체적인 쾌락은 그 단어의 깊이나 결이 전혀 다르다.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서는 육체적인 쾌락은 사랑에 의한 법적인 연합 이후에 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가치에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