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저자의 비슷한 이름의 책이었는데, 두께가 훨씬 얇아 책을 먼저 집었고, 그렇게 한숨에 다 읽었다. 어휘 늘리는 법이라는 책의 제목과 달리, 어휘에 대한 국어교사 출신의 저자의 생각들을 담은 책에 가까운 듯하다. 생각할만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두 곳만 이곳에 남긴다.
인민은 영어 'people'을 번역한 말이다. 그러므로 인민이라는 말 자체에는 이념의 색깔이 들어 있지 않다. 북한에서 인민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쓰는 바람에 남한에서 인민이라는 말을 버리고 국민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무라는 좋은 말이 남한에서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다.
83쪽. 같은 책.
북한에게 빼앗긴 단어들이 많은 것처럼, 여러 공동체에 빼앗긴 나의 표현들이 이미 많다. 나에게 가장 선명한 표현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 이라는 의미의 신천지, 그리고 사랑이 이긴다는 의미의 Love wins 두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이단에게 그 표현을 빼앗겼고, 하나는 성소수자들에게 빼았겼다.
‘빼앗겼다’라는 과격한 표현을 썼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빼앗긴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내버렸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기보다 이곳에서의 잘됨만을 고대했다. 그렇게 우리는 신천지를 잃어버렸다.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미움을 실천하고, 내 의로움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에게 죄 많음을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이 이긴다는 표현을 잃어버렸다.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어휘 목록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어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어휘를 사랑하는 자세 기르기가 먼저다. 김수영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글에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았다. 이를 본떠서 소설가 고종석 씨는 같은 제목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어휘 열 개를 소개했다.
73쪽. 같은 책.
같은 공동체(기윤실 교사모임)에 머무르시는 정병오 선생님의 ‘주관적 단어 사전’만들기가 참 인상깊었다.
https://proustclub.tistory.com/m/26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이 났고,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오래 머무르는 열가지 우리 말을 모아보았다. (책에서는 순우리말을 꼽았지만, 나는 순우리말을 따지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표현 전부에서 꼽았다.) 여기에 선정 이유를 나열해보고자 한다.
사랑스럽다.
학급 급훈으로 늘 지정하는 표현이다. 사랑이라는 명사가 아니라 사랑스럽다는 형용사로 단어를 정한 건, 사랑보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더 좋아해서다. 한 사람의 존재를 표현하기 가장 적합한 단어라서 더 자주 사용하는 듯하다.
존재.
나는 여러 사고 과정에서 ‘존재성’을 논증할 때가 꽤 자주 있는 편이다. (신의 존재 논증, 혹은 감정과 이성의 실재여부 등등) 수학교육과 1학년부터 다양한 개념을 정의할 때마다 항상 ‘존재성’, 그리고 ‘유일성’에 대한 판단을 해오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다. 논리적 사고에서만 존재성을 판단하다, 학교에 오고 나니 추상적 개념을 논하기만 하던 ‘존재’의 의미는 더 실재적으로 다가왔다. 존재성이 사랑받을만한 당위성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레 사랑스럽다는 단어와 함께 내게 의미가 큰 단어로 와닿게 되었다.
아내(내 안의 햇님).
어휘에 성별에 대한 성질이 포함되는 단어들은 대부분 성차별적 성격을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것 같아보인다. (20세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단어들이 그 시대의 사회상에서는 차별이라 여겨지지 않았을테니까.). 그렇게 ‘아내’라는 단어를 선택하기까지 오랜 고민을 했다. 다양한 기원설이 있지만 대표적 기원은 ‘안’(內)의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마치 남편을 ‘바깥양반’이라 부르고, 아내를 ‘안사람’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그렇다고 다른 단어를 고르자니 그 단어들의 느낌들 또한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아보였다. 와이프(외래어도 아닌 외국어를 굳이…), 여편(남편의 대립어이지만, 얕잡는 말로 쓰이는 ‘여편네’와 너무 닮아있다.), 처(妻)(벼슬이 가장 낮은 서민 아내의 호칭으로 쓰여왔다. 물론 우리 가정이 벼슬이 있진 않지만, 봉건 계급사회 가장 낮은 계급의 호칭을 아내에게 쓰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결국, 내가 선택한 단어는 국어원에서 소개하는 표준어인 ‘아내’이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닐 때에는, 가능하면 ‘내 안의 햇님’이라는 단어를 쓴다. 현재는 비표준어이지만, 아내의 어원으로 알려진 안해(內人)의 나만의 풀이로 ‘내 안內의 햇님太陽‘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부르는 표현을 아무 고민 없이 그냥 내키는데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직장에서 아내를 언급할 일이 생길때마다 별 생각없이 아내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온 마음 다해 고민한 표현이 고작 ‘아내’여서 여전히 마음은 쓰인다.
기쁨.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에만 해도 ‘기쁨’이라는 이름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기쁨’을 생각할수록 ‘기쁨’이 쌓여가는 내 마음을 자주 직면하게 되면서 점점 이 단어가 좋아졌다.
은혜.
누엘이 이름의 첫글자다. 사랑 다음으로 좋아하는 기독교 단어가 단연 은혜다. 사랑은 선물임과 동시에 가르치고 배우고 실천해야 할 숙제와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에 비해 은혜는 그저 선물같은 느낌이다. 사랑은 ‘자, 선물이야.ᐟ 선물을 받았으니 감사의 표현을 해야죠?'의 느낌이라면, 은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받으렴.’의 느낌이라 더 편하게 와닿는다.
아내의 성이 ‘은’씨인 것 또한 이 이름을 누엘이의 이름으로 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을 선택할까, ‘은혜’를 선택할까 기도와 고민을 많이 하였는데, 우리에게 자녀가 그저 선물인 것처럼 누엘이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계속 품은 채 양육하고 싶다. (즉, 누엘이가 우리에게 선물+숙제 보다는 그저 선물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편지.
편지를 무척 좋아한다. 쓰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한다. 얼굴보고 하지 못할 오글거리는 이야기들을 편하게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이 편지의 장점인 것 같다. 또한 글을 쓰는 시점과 받는 시점이 다르다는 점도 독특한 매력이다.
물결.
누엘이의 두 번째 이름 글자다. 물에 들어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물결을 바라보는 건 어느 물이든 좋은 것 같다. 바닷가의 잔물결이든, 강물의 흐름이든, 심지어는 세면대 물의 결도 그렇다. 내가 배운 물리학 영역에서 충분하게 기술되지 않는 점이 더 흥미로워서 더 쳐다보게 되는 것 같다.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아, 당연히 유체역학의 기술은 교양수준에 머물러있다.)
마음.
책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에서 한 가지 표현을 배웠다.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무수히 이 질문을 많이 던질 때마다, 정확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는 경우가 참 많았고, 횡설수설하며 말하거나, 혹은 글을 쓰며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내 마음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되곤 한다. 일상을 자주 나눌 수 있는 영역 안에서 내가 횡설수설하며 말할 상대, 그리고 그러한 말하기가 가능한 공동체(안전한 공동체)가 내게는 아직 아내 한 명 뿐인듯하다.
그렇게 내가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 몇년 되지 않았다. 약 5년 정도 되어가는 듯하다. 조금 더 마음을 살피다보면 내 마음을 나 스스로에게는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마음에 비해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있는 중요한 관념이었다. 경험적으로 나는 ‘생각한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지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되었고, 고등학생부터는 생각한대로 삶을 선택하는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다. 당위성 없이는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습관이 이때부터 잡혀있다. (그럼에도 나는 대단히 많이 움직이는 사람인데, 아주 작은 당위성이라도 존재한다면 바로 몸을 일으키는 훈련도 잘 되어있는 편이라 그렇다.) 간단한 예시로 ‘A라는 학생이 결석계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몸을 움직여 결석계를 전달하는 식이다.
통찰.
‘예수전도단’ 선교단체의 캠퍼스 사역에 머무는 시간 동안, 세 번의 해외 단기 선교를 다녀왔다. (캠퍼스 사역에서는 겨울방학마다 단기선교를 갔고, ROTC 훈련이 있지 않은 모든 방학마다 단기선교를 갔다.) 일반적인 해외 여행만으로도 안목과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고 오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심지어는 단기 선교로 해외를 다녀오니 세계관과 함께 다양한 배움을 얻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첫 단기선교지인 ‘요르단’에서부터 다양한 시각과 가치관들을 배웠고, 이것들이 쌓이는 통찰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개념화하게 되었다. 통찰력있는 사람들의 선택은 근시안적이지 않고 시간을 꿰뚫는 결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안목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지금도 애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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