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야자를 했었다.
담임선생님께서 표가 그려진 종이를 하나 돌리셨고, 학생이었던 우리는 명렬표에 있는 우리 이름을 찾아 어느 요일에 야자를 할지 선택해서 돌려드렸다. 하루가 지나면 야간 자율학습 표가 만들어져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대로 야자를 했고, 담임선생님 몰래 자습실을 나와 바깥 공기를 쐬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나에게는 야자 또한 그저 `그냥 하면 되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직접 학교에 와보니, 그냥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교사들이 직접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야자 언제부터 시작해요?` 물으러 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답답함이 생겨났다. `그냥 방과 후에 아이들을 모아두고 야자를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냥 시작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자습을 준비하며 깨달았다.
코로나로 2년간 쉬었던 자습을 시작하면서 많은 부분을 바꾸어야 했고, 실제로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교내 급식으로 석식을 진행할 수 없었고, 자습 감독 표도 새로 만들고, 학년별 자습 매뉴얼도 다시 만들었다. 학년별, 부서별로 서로 다른 교육철학을 가진 상황에서 각 학년은 따로 자습 매뉴얼을 만들었다.
자습이 기획되던 시기에 2학년부 부서장 선생님이 코로나19로 일주일간 격리당하며 2학년은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1학년부와 3학년부가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동안, 2학년은 교무부의 지침에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결국 석식 신청은 종이로도 받고, 전자 설문으로도 받았다. 둘의 차이가 생기니 결국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다시 확인했다. 2학년부의 협의나 결정 없이 교무부에서 내려온 `아침 자습`, `오후 자습`, `야간자습`에 대한 충분한 사전 안내 없이 자습 신청서를 그대로 설문으로 보냈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은 자습이 시작되고 나서도 계속 신청내용을 수정했다.
`이걸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라는 생각을 매일 하며, 매일 야자 현황표를 다시 만들고 학생을 불러 다시 확인하고 다시 갈아엎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통째로 털어 넣어서야 겨우 자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처럼 `그냥 남아서 공부하다 밥 먹고 또 공부하다 가면 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낭비된 종이와 인력, 시간이 부디 긍정적인 결과로 맺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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