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 확인 문구를 보니 이전의 기억들이 서서히 떠오른다. 19학년도의 남학교부터 20학년도의 여학교까지 치러왔던 학력평가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3년은 학생으로, 19학년도는 K학교에서 학력평가를 보낸 기억이 아직은 더 긴 기억이라 그럴까. 2학년 학생들에게 3학년 학력평가 문제지를 나누어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누구도 2학년 학생들에게 3학년 학력평가 문제지를 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14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때의 어느 학교는 1-3-3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2학년 때 어차피 수능 과목을 배우니, 그때부터 바로 고3 문제를 풀게 하자는 의도였다. 학력평가 문제지 & 답안지는 어차피 넘치게 포장해오므로, 3학년 교실에 배부되고 남은 학력평가 문제지를 모아, 2학년에게 내려보내어 풀게 했다. 물론 당시의 2학년들은 매우 이 시간을 고통스러워했다. 보통 학력평가를 진행하면 하루에 3개 학년 학생이 모두 시험을 치렀다. 2학년 학생들은 일과시간에 자신들의 학력평가를 치르고, 이어서 야간에 3학년 형들의 학력평가 문제지를 또 받아 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2학년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체력 소모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2학년 학생들에게 3학년 문항을 미리 경험하도록 하는 일은 의미가 있었다.
지난주부터 내내, 오선화 선생님의 책 『교사, 진심이면 돼요』가 떠오르고 있다. 군인 신분에서 읽었던 책이어서 그런지, 너무 오래전에 읽었기에 그런지,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서평을 쓰는 습관을 들이기도 전에 읽은 책이었기에, 그 내용이 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단행본의 제목대로, '정말 '진심' 하나면 될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되뇌게 한다.
그럼 나의 진심은 과연 무엇일까?
3학년 교실에 문제지를 구걸하며 다닌다. 2학년 학생들에게 3학년 교실의 문제지를 가져다준다. 오늘의 삶이었다.
3/17(목) 첫 야자를 시작하기 전까지, 학원이 없는 친구들을 남겨 공부시킨다. 3월 초의 삶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야자 추가 신청을 전부 받아준다. 요즘의 삶이었다.
시간을 들여 가능한 쉬는 시간마다 교실에 찾아간다. 교사로 살기 결정하면서 스스로가 지키기로 약속한 삶이다.
작년 성탄절쯤, 1학년 반 아이들과 방송부 아이들에게 썼던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본다.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세 가지였다.
1. 스스로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2. 지옥과 같은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을 것.
3. 너희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도록 노력할 것.
그 세 가지에 '공부'와 '성적'은 없었다.
이 세 가지의 적용으로 2학년의 자연 계열 친구들에게 '일단 오늘은 최선을 다해 공부할 것'을 요청한다. 논리적 비약이 너무 큰 것 같기도 하다. 위의 3가지로 인해 '그래서 일단 지금은 공부를 할까?'라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게 되는 걸까.
나 자신도 아직 가치관을 명확하게 정하기가 어렵다. 매일의 삶에서 더욱 배워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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