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하마터면 또 숫자로 볼 뻔했다.

꿈잣는이 2022. 4. 24. 21:34

4월 14일 (목)

학급별로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성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일람표와,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무엇을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개인별 성적표가 있다.

3월 학력평가 성적일람표가 도착했다. 2학년부에는 기민하게 성적처리를 진행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기에, 성적이 발표되자마자 받을 수 있었다. 성적표의 출력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보안 요소가 많기에 학급별로 출력본 1부만 받는다. (물론 재출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집에서도 언제든지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는 주민등록등본과 주민센터에 방문한 뒤 발급 수수료 800원을 내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 인감증명서, 본인서명사실확인서의 접근성이 같을 수 없다.) 출력한 학생들에게 건네주고 나면 다시 출력이 쉽지 않아, 우선 스캔을 먼저 해둔다.

해당교의 성적 분포와 전국 성적 분포를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인원분포표도 따로 제공해준다.

전달받은 성적일람표를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본다. 8시간 동안 치렀던 시험의 기록이 모두 들어있다. 2교시 시험의 7번 문제를 어떻게 표시해서 틀렸는지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담임선생님들께 전달되는 `등급별 인원분포표`는 또 다른 정보들이 담긴다. 성적의 전국 분포와 학교 분포를 비교할 수 있다. 2학년 교무실에 수학 선생님 세 분이 나란히 앉아, 성적일람표와 인원분포표를 보며 각종 분석을 시작한다. 선배 선생님들의 통찰에 기반한 분석을 들으며, 여러 생각들이 올라온다.

 

인천에서만 조금 나은 수준이지, 결국은 거의 전국 평균 수준이구나.
'정시 파이터'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수시가 될 수밖에 없구나.
1, 2, 3학년에서 가장 가능성 있는 학년이 2학년이라는 소식을 2월부터 들어왔었는데, 우리 2학년에게 남아있는 가능성은 고작 '이만큼'이구나.

 

드러난 숫자와 분포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다가, 멈칫했다.

 


'또, 학생들을 숫자로 보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20901이라는 번호로 학생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학생을 기억하고 싶다. 국수영과 3.41등급이라는 숫자로 학생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록 밴드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아이, 포켓몬 빵에서 파이리를 뽑은 아이, 남자 아이돌 포토 카드 재테크를 잘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싶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분석된 숫자들로 학생들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따뜻한 마음을 찾아내고 싶다.

 

사족.

학생들의 성적을 분석하고 통계작업을 할 수 없도록, 교육청은 데이터 파일(엑셀 파일)로 성적을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pdf 파일로만 성적을 준다. 하지만 학교는 이 성적을 분석하기 위해, 담임교사의 노동력을 투입해서 일일이 손으로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을 코딩하고, 담당 선생님께서는 통계 처리해서 학생 개인별 정보로 담아둔다. 학생들을 숫자로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수정할 수 없는 자료를 보내주지만, 굳이 학교는 학생들을 숫자로 보기 위해 애쓴다. 성적을 분석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더욱 중요한 일인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