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일 (화)
SNS의 종류가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기존의 대규모 SNS와 그 계정을 연동해서 그 접근성을 낮추고 다양한 특색을 갖춘 다양한 SNS가 지금도 많이 생산된다. 그중 "Asked 익명 질문" 애플리케이션은 익명으로 상대에게 궁금한 질문들을 올려 답변을 받을 수 있다. 답변을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으며, 답변을 남겼을 때만 그 질문과 답변이 공개된다.
오늘도 지극히 평범한 일과 중 하나로, 학생들의 SNS 사진들을 보며 그들의 근황을 살폈다. 한 학생(A)의 익명 질문 링크가 프로필에 있는 것을 보고 그 계정에 접속해 보았다. 그 계정에 기록된 숫자들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부된 질문이 1,000개가 넘었다. 계정을 만든 지 오랜 시간이 지나 그저 기록이 많은 것일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답변의 수를 살폈다. 답변의 숫자는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계정을 유지하며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면, 결코 10개의 답변만 존재할 리가 없다. 공개된 답변의 100배가 넘는 질문이 거부되었다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 익명의 사용자가 A 학생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올렸고, A 학생이 답변을 거부하자 계속 같은 질문을 올렸다.
- 익명의 사용자가 익명의 힘을 빌려 공개된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표현(선정성/폭력성/범죄 및 약물/사행성 등)을 악의적인 목적을 담아 반복해서 올렸다.
어떤 이유이든 정상적인 계정의 상황은 아니었다.
천 번이 넘는 `거절하기`를 눌렀을 이 학생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거절하기를 누르기 위해 읽어내야만 했던 1,000개의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는 얼마나 이 학생의 눈과 귀와 마음을 찔렀을까. 상상이 잘되지 않는다.
단순한 메시지인 "일어나! 학교 가야지!"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동안 1000번 듣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밥 먹자."와 같은 일상 언어를 1000번 듣는 것조차 우리에겐 매우 버겁다. 이 이야기를 온몸으로 견디어낸 아이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평범한 부모의 일상적 조건 속에서도 아이에게 치명적인 결핍이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중략)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자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중략) 내가 왜 못나게 이럴까, 내가 문제야' 하고 스스로를 탓한다.
(232쪽, 정혜신. 『당신으로 충분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은 자신에 대한 안도감을 갖게 한다. '그래도 괜찮은 거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만 이상하게 동떨어진 인간이 아니었구나' 하며 안심한다. 그 느낌은 사람에게 치유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치유적인 깨달음이다.
(128쪽, 같은 책)
자신에게 펼쳐졌던 1,000개의 잊고 싶은 이야기가 '나의 어떠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좋겠다.
'내가 이상해서' 1000번의 거절하기를 눌러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1,000개의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보다 더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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