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닮고 싶은, 위로를 전해주시는, 방향성을 안내받는 교사 공동체가 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모임에 함께했다. 그 공동체에서 오랜 시간 먼저 고민하고, 생각한 것들을 삶으로 살아 내오셨던 선생님의 SNS 글을 소개받아 읽어보았다. 글을 나누며, 마음이 함께 멈추는 부분을 만났다.
1단계 `주관적 사전` 쓰기는 오디세이 있을 때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김혜진 작가님 수업에서 배운 것인데, 글쓰기 첫 단계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이들에게만 과제를 내고 피드백을 해왔는데, 선생님은 왜 안 하냐는 항의를 받고 나도 `주관적 사전`을 써서 아이들과 공유를 했다. 그 중 일부를 페친들과 공유한다. (위의 글.)
이 글에서 이 선생님께서는 교직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풀어내셨다 :
이제는 돈을 내고서라도 계속 있고 싶은 곳. (같은 글.)
나보다 27년을 먼저 살아오셨으니, 곧 교직을 정리하실 시기의 선생님이시겠다. 그런 선생님께서, 교사의 일을 `돈을 더 내고서라도 계속 있고 싶은 곳`으로 말씀하신다. 어떠한 마음으로 이러한 표현을 썼는지 다 알 수 없지만, 짧았던 내 4년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서 내 나름의 이유가 하나씩 마음에 쌓인다.
학생들과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에 큰 기쁨이 된다. 취미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나의 시간과 재정을 투자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인데, 삶에 큰 기쁨이 되는 일을 하며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큰 축복이 될 것 같다.
그들의 성장과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또 다른 설렘이며, 두 눈으로 그들의 성장과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때의 기쁨과 환희는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이러한 행복한 경험을 가질 수 있다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을 것이 당연하다. 교회 학교 선생님들이 아마 그러한 마음일 것 같다. 이 축복받은 일을 나라에서 월급까지 주면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한지.
정병오. (2022). https://www.facebook.com/jungpaul1/posts/4994369977295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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