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달달 인문학(철학) 특강

꿈잣는이 2022. 9. 12. 01:06

8월 12일 (금)

맘껏 흔들리고 불안정해지는 게 나아. 그래야 뭔가 탄생할 여지가 생기는 거니까.
(172쪽. 김혜진(2005). 『프루스트 클럽』.)

 

비전홀(강당)에서 진행된 인문학(철학) 특강.

인천대학교 정연재 자유전공학부 학부장 교수님이 우리 학교에 방문하여 특강을 진행해주셨다.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주제로 특강을 들었다. 철학과 교수님의 특강이 학교에서 열리는 귀한 기회였기에 시간을 쪼개어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활기록부를 위해 빼곡히 활동지를 채워 넣는 학생들도 있었고, 간식을 받기 위해 방문한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특강을 마치고 20분 넘게 교수님께 추가 질문을 하는 학생들을 보며,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남아있음에 또 위로 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께서 많이 참석하셨다. (퇴근 시간을 20분이나 넘겨서 시작하는 특강이었는데도, 많은 선생님이 모이셨다. 아무래도 교사는 늘 ‘배움’을 열망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의 예화로 강의를 시작했다. 내가 자주 보아왔던 인문계 고등학교의 피아노 (예비) 전공 고등학생들은 정규 학교 수업을 조퇴로 빠진 뒤 피아노를 쳤다. 그런 내게 임윤찬 군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리스트의 (중략) <단테 소나타> (중략) 곡을 이해하려면 신곡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 출판사 책을 구입해 다 읽어봤어요. 거의 유일하게 전체를 외우다시피 읽은 책입니다.
(임윤찬(2022).)

 


라고 말하는 임윤찬 군의 이야기는 강의 시작부터 나에게 생각과 고민을 쌓게 했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 연습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피아노뿐 아니라 또 다른 ‘중요한 것’이 있음을 임윤찬 군은 삶으로 그 사실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연습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주관이 있었다.


임윤찬 군으로 강의를 시작하신 교수님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에 방점을 찍으셨다. 성공 지상주의의 대한민국에서, 성공 대신 성장에 강조하시는 교수님의 이야기가 언뜻 듣기에는 딴 나라의 이야기 같았다. 취업과 가장 먼 철학을 전공하신 분께서 마침내 철학으로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업인 전임 교수님이 되셨으니. 학부장님의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위에서나 할 수 있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곧이어 교수님의 학부 교육의 '유용성'에 대해 천천히 설명 들으며, 번민하고 혼자 분투하던 20대 초중반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삼십 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고 씨름하고 있는 건 변함없다.) 별생각 없이 수학교육을 전공하며, 교직을 배우며 다녔던 1~2학년, 그리고 국어국문학을 함께 복수전공을 하던 3~4학년 때의 생각의 결은 무척 달랐다. 무엇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교수님들이 남겨놓으신 무수한 질문들의 뜻을 찾다 헤매던 시기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다 덮어두고 연천에서 군 복무를 하던 26살에서야 ‘교양(Liberal Arts)’의 의미를 깨닫고 이제부터라도 교양을 쌓기로 결심했던 기억들이 여전히 선명하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고민했던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전제들의 기반을 흔들며, 외적 현상의 저변과 배후의 것들을 밝히고, 스스로가 방향을 세우는 방법을 돕는’방식을 숭덕의 아이들이 미리 경험하기를 교수님께서는 바라셨던 것 같다.

 

교양교육은 유용하다. 유용하다는 것은 교양교육의 목적이 학생들에게 전문직을 위한 트레이닝을 시키거나 졸업 후 삶의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그들에게 친숙한 세계만이 중요하다는 가정을 치켜세움으로써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갖게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 반대로 교양교육의 목적은 (후략)
(Faculty of Arts and Sciences in Harvard University, “Report of the Task Force on General Education," 2007, 1-2쪽.)

(전략) 전제들의 기반을 흔들어놓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외적 현상에 대한 저변과 배후에 작동하고 있는 것들을 밝히고, 젊은이들에게 방향감각을 잃게 해 혼란을 가져다주고 다시 그들 스스로가 방향감각을 되찾아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653쪽, 정연재(2014).)

 


무척이나 공감한다. '조금 더 빨리 고민했다면..., 조금 더 빨리 알았다면...' 하는 마음이 늘 있다. 학생들에게도 교수님의 그 마음이 (그리고 나의 마음도) 전해졌다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그 ‘자유 교육(교양 교육/학부 교육)’을 고등학교에서도 일으킬 수 있을까? 답이 쉽게 나지 않는다. 교수님은 ‘줄탁동시’를 예로 들어주셨다. 줄탁동시에서 방황의 주체는 아기 새이다. 하지만 교육의 방향성은 어미 새와 아기 새가 함께 한다. 어미 새의 도움과 같이 고민의 방향성을 계속 안내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겠다.


미미한 개인의 경험을 나누어본다.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주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위의 설명과 같이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하고, 전제들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고등학생 때부터, 습관적으로 “이걸 왜 해?“ 질문했다. 귀찮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당위성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사소하게라도 그 당위성이 생긴다면, 주저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오히려 더 부지런한 삶을 살게 된 듯도 하다. ‘재미있으니까.‘라는 사소한 이유라도, 이유와 목적이 있는 움직임은 작은 행동도 자신감 있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Disaster". 부정 접두사 Dis와 별을 의미하는 Aster 접미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로 설명해주셨다. 기준이 되고 목적이 될 별이 없는 상황. 그 어찌 재앙이 아닐 수 없을까. 작고 사소하더라도, 숭덕의 아이들이 그 이유, 당위성을 찾아가면서 삶을 살아내면 좋겠다. 그렇게 맘껏 흔들리고, 또 불안정해지며, 혼란을 겪으면 좋겠다. 그래야 무언가, 탄생할 여지가 생겨날테니까.

 



사족.
아래는 강연에서 내가 남기고 싶었던 부분들이다 :
1.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해주셨던 교수님의 답변 1)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시간 관리입니다. 공부방법보다 더 시급하게 익혀야 할 것은 효과적인 시간 관리입니다. 최소한 1주일 단위로 계획을 수립하고, 다시 1일로 계획을 세분화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또한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고,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우선순위를 배정하여 수행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입니다. "태도(attitude)가 고도(altitude)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우선적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2. 새내기 대학생들에게 해주셨던 교수님의 답변 2)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경쟁의 구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과의 경쟁을 생각합니다만, 이제 대학에서 와서는 타인과의 경쟁보다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 몰입해야 합니다. 즉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서 무언가 진전된 모습을 발견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을 잘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3. 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1)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갈 것. (충분히 고민하고, 방황할 것.)
4. 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2) 모든 것을 의심할 것
나는 한 아이나 젊은이가 자신의 길위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 낯선 길위에서 바르게 걷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괴테(1796))
5. 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3) 새로운 나를 위해 고통을 감수할 것.
6. 숙제로 남기셨던 질문 1)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는 “누구나의 삶에는 경이로운 스토리가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나만의 성장 스토리를 쓰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7. 숙제로 남기셨던 질문 2)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은 현대인이야말로 사회가 설정한 성공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른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나는 고유한 존재로서 나만의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참고문헌.
1. 김혜진(2005). 『프루스트 클럽』, 바람의 아이들.
2. 임윤찬(2022.) 임석규 취재(2022). 「임윤찬 “유튜브 지웠어요”…350만뷰 휩쓴 18살 장인의 강단」. 한겨레 신문.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049173.html
3. Faculty of Arts and Sciences in Harvard University(2007), “Report of the Task Force on General Education,"
4. 이태하, 정연재(2014). 「스마트시대 새로운 기초역량교육 모델 찾기」, 『교양 교육 연구』 2014. 12, Vol. 8, No. 6, PP. 647~673
5. 김지현(2014). 「학제적 교양교과과정의 특징과 정의」, 『교양 교육 연구』 2014. 12, Vol. 8, No. 6, PP. 193~247
6. 괴테(1796). 안삼환역(1999).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