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 금지법을 문자 그대로 지킨다. 담임교사가 되면 학생의 보호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발적으로 수업 평가를 받는다. 교사로 살아가기로 결정하면서 내가 나 자신과 기쁘게 맺은 약속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교원 능력 개발 평가는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작년에 이어 코로나를 이유로 동료평가(동료들끼리 매기는 평가이며, 주로 관리자 선생님들만 평가를 진행하고, 대부분의 교원은 평가를 받는 입장이다.)는 제외된 채, 학생, 학부모 평가만 진행되었다. 자발적으로 수업 평가를 받고 싶었던 나는 담임 반 아이들에게, 그리고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평가를 요청했다. 그렇게 받은 결과를 열람하는데, 평생 처음 보는 피드백이 있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을 학생들에게 다시 어떻게 보여주지...?'였다. 수업 평가를 받을 때마다, 그 결과를 학생들에게 다시 보여주면서 받은 서술식 평가에 대한 내 나름의 피드백을 전해주었다. 때로는 변명을, 때로는 새로운 다짐을 전해주기도 하였다. 가령 '시험 문제를 조금 더 쉽게 내주세요.'라는 서술식 평가를 보여주며, '미안해, 올해 시험이 유난히 어려웠지? 내년부터는 조금 더 너희의 눈높이에 맞는 평가를 할게. 그런데 잊지 말아 줘. 우리는 언제나 더 쉽고 더 편한 것을 찾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렵게 성취한 것일수록 그 소중함과 성취감은 더 오래 지속될 것을. 잊지 말아 주렴.'과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받은 평가를 그대로 띄워주고 피드백을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누가 객관적으로 평가를 읽더라도 읽는 이의 마음이 불편해질 만한 표현들이 가득한 응답이 하나 있었다.
이 답변을 보며, '맞아. 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성적으로 비교하고 조심성 없으며 구시대적인 사람이야.'라고 공감하기보다는 '헐 저 글 도대체 누가 씀?'이란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학급 운영을 할 때에, 반 전체 학생들이 교사를 싫어하는 것이 특정 친구 한 명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무섭고 소통이 안되는 담임교사가 있는 교실은 적어도 쉬는 시간, 혹은 담임 수업이 아닌 교과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모든 학급 학생들이 싫어하는 학생이 한 명 교실에 존재하는 그 순간, 교실의 분위기는 등교할 때부터 하교할 때까지 끔찍하다.
참으로 길고 오랜 고민 끝에 결국 기존의 약속을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언급대로 모든 서술식 평가 내용을 공개했다. 역시나 pdf 파일을 열자마자 '진짜 싸가지 없다' '말투 왜 저럼?'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들을 덮으며,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어머, 몰랐어. 미안해. 나는 성적으로 비교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지금도 비슷한 생각이긴 해.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생각을 했다는 것은, 나의 말속에 분명 학생들을 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아주 많이 있었다는 의미일 거야. 당장 고쳐지지 않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꼭 고치고 싶어. 혹여나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꼭 다시 내게 이야기를 해줘! 익명 질문 창은 항상 열려있으니, 내가 또 실수할 때마다 편하게 연락을 부탁해."라고 이야기를 마쳤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계속 문장들을 읽어내면서 점차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교원평가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점들이 하나씩 눈에 보였다. 졸고 있는 아이를 깨우며 '예쁜 00아 일어나야지~'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머~ 똑똑하니까 다 알고 있다고 자는 거지?'라는 말로 학생들을 깨우는 경우가 있었다. '00아 너는 한 번 듣고 다 이해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걸?'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표현이었다. 똑똑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를 이분해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다.
가장 속상한 점은, 사실을 깨닫고도 나의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머, 이 표현은 성적으로 친구들을 차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의식중에, 그리고 무의식 중에서도 '너는 똑똑하니까~'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했다.
여전히, 나는. 학생들을 성적으로 비교하는 사람이었다.
어서, 하루 빨리 나쁜 습관을 고쳐야겠다.
'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음으로 이런 사람이 선생님 하는구나 싶었어요.' (0) | 2022.11.12 |
---|---|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따라다닙니다. (0) | 2022.11.12 |
달달 인문학(철학) 특강 (2) | 2022.09.12 |
천 번의 거절하기를 어떻게 감당해내었을까. (0) | 2022.07.27 |
돈을 내고서라도 계속 있고 싶은 곳 (0) | 2022.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