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에서 선생님들께 감사편지를 쓰는 이벤트를 진행했고 나는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
언젠가 SNS에 교복 착용 활성화를 위한 현수막에 대한 글을 올렸고, 많은 친구들이 그 이야기에 참 많이 공감해주었다. 그 글을 읽고 누군가가 이 편지를 써준 듯하다.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교복 입기 캠페인으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패러디하여 "갖춰 입어야 예쁘다. 바르게 입어야 사랑스럽다. 교복이 그렇다."라는 현수막을 학교 입구에 설치했다. 예쁨과 사랑스러움에 '갖춰 입을 것, 바르게 입을 것, 교복을 입을 것'이라는 조건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였고, 그것이 학교 모든 구성원의 공통된 합의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고, 그저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물론 교복을 입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학교에서 교복 입기를 매우 강력하게 주장하는 몇 없는 선생님 중 하나로 손에 꼽힌다. 나는 교복과 사랑스러움 사이의 관계를 부정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감사의 연락을 보내고 싶다. 익명의 편지이기에 그럴 수 없음이 참 아쉽다.
학년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일수록 속상한 점과 아쉬운점이 쌓이고 올 한 해를 돌아볼수록 '내가 해왔던 일들이 맞는 일일까?' 고민이 쌓이고 한숨이 쌓인다. 그러는 시기에 받은 이 편지는 위로가 되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더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사람은 마음에 안정감이 깃들기 시작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마음이 생길 때, 보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나 스스로 그다지 좋은 교사라 여기는 편이 아니었기에 선생님들, 또는 학생들의 칭찬에 마음이 움직인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이 편지 속 '처음으로 이런 사람이 선생님 하는구나 싶었어요.'의 표현이 마음에 오래 머무른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가 학생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사랑 없는 나를 반성하기만 하던 나는 '이제 그래도 조금은 사랑을 전달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익명의 이 학생도, 어떠한 어른이 되어야 할까 고민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나보다.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어른을 찾아 헤맸던 18살의 내가 계속 비친다. '배우고 싶은 어른이 세상에 한 명도 없구나.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교만하고 철없던 18살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학교는 나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다. 익명의 이 학생도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을 많이 보고, 경험하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이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글로 배워 알기보다, 삶으로 경험하여 알아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SNS 게시물 링크. (https://www.instagram.com/p/CjqHJFxBMq1/?igshid=YmMyMTA2M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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