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 고등(大學) 교육을 얼마나 잘 배울(修學) 수(能力) 있는지를 판단하는 표준화시험이다. 초기 수능은 정말로 대학 과정을 얼마나 익힐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국어시험', '수학시험', '영어시험'을 치르는 대신, '언어', '수리 탐구 I', '수리 탐구 II', '외국어'영역을 평가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도 당황스러운 대입 시험이었기에, '수학 능력'을 판단한다는 목적은 금방 소멸했고, 결국 평가 영역도 '국어영역', '수학 영역', '영어영역'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수능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된 지 20년이 가까워져 가고 있다. (교육과정 평가원은 2005학년도 수능부터 수능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유선 전화기와 호출기(삐삐)를 주로 사용하던 시절의 수능부터 이미 수능은 안정기를 지나고 있었다. 스마트폰은 물론, 스마트 안경과 자율주행 자동차가 다니는 지금도 같은 평가 방법의 수능을 사용하고 있다.
수능 시험장에서는 8시 10분부터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에 대한 안내가 흘러나온다. 안내 방송이 언급하는 품목 종류만 총 14가지이다. 하나씩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휴대전화, 스마트기기(스마트 워치 등), 디지털카메라, 전자사전, MP3 플레이어, 태블릿 PC, 카메라 펜, 전자계산기, 라디오,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통신*결제 기능(블루투스 등) 또는 전자식 화면표시기(LCD, LED 등)가 있는 시계, 전자담배, 통신(블루투스 등) 기능이 있는 이어폰 등 모든 전자기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전자기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는 아마 PMP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인터넷 강의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재생할 수 있는 전자기기였다. 약 10년 전의 내가 수능을 볼 때, PMP가 가장 핫한 전자기기였다. MP3 기능이 합쳐진 전자사전은 그보다 몇 년 전의 수험생들이 사용했었다. 그리고 더 오래전부터 사용해왔을 라디오까지. 30년의 수능의 역사와 함께 이어온, 시대를 풍미했던 모든 전자기기가 다 표현되어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수능을 보아야 할까.
작년 22학년도 수능부터 수학 영역에 인문 계열, 자연 계열 구분이 없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계열 간의 구분 없이 공통 과목과 선택과목을 구분하여 '문과/이과'가 아니라, '확통 선택자 / 미적분 선택자 / 기하 선택자'로 수능을 보아 더욱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상대평가인 수능에서는 1등급 (4%)의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별력 있는 문항을 출제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선택과목에 따른 유리함/불리함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교육과정평가원은 변별력 있는 문항(소위 '킬러 문항')을 공통과목에서 출제한다. 왜 그럴까? 만약 '미적분' 선택과목에서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미적분'을 선택한 수험생에 비해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들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따라서 어느 과목을 선택했는지가 대입에 무척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일들을 미리 방지하고자, 어쩔 수 없이 가장 어려운 문제는 공통과목에서 출제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7차 교육과정 당시 수능에도 잘 드러났다. 7차 교육과정은 인문 계열 / 자연 계열이 구분하여 수학 시험을 치렀지만, 그 중 자연 계열 수능에서는 다시 '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세 과목 중 한 과목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세 과목 간의 유리함/불리함을 없애기 위해, 자연 계열의 공통문항 25번 문항이 가장 어렵게 출제되었다.) 즉, 인문 계열 / 자연 계열 수험생 모두가 변별력 있는 문항을 맞닥뜨리게 된다. 자연 계열 학생들에게 는 '이게 왜?' 라는 질문이 들 수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까지는 그러하였다. '국어도, 영어도 같은 시험을 치르니, 수학도 같은 시험을 치르면 되지 않아?' '그럼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수학은 어떤 다른 과목들보다 과목의 계통성이 중요하고, 선수 과목(먼저 듣는 수업 과목)과 후수 과목(이어서 나중에 듣는 수업 과목)의 연계성이 매우 크다. 자연 계열 학생들의 '미적분' 과목을 이미 수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크게 작용한다. 3학년 미적분 수업에서는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함수를 분석하고, 그중 한 방법으로 함수의 합성을 사용한다. 미분도 한 번 사용하지 않고 여러 차례 함수를 미분하여 그 함수의 특징을 찾는다. 그리고 자연 계열 과목인 '물리학I'에서는 위치, 속도, 가속도 사이의 관계를 한 단원 내내 다룬다.
다채로운 합성함수를 경험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문제를 볼 때 접근할 수 있는 풀이의 개수가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학과 교육과정에서는 수학 II 평가 방법 및 유의 사항에 '복잡한 합성함수나 절댓값이 여러 개 포함된 함수와 같이 지나치게 복잡한 함수를 포함하는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p.79 수학과 교육과정)라고 명시해두고 있다. 그리고 이번 수능 문제에서 '복잡한 합성함수' 대신, 표현을 바꾸어 합성함수가 아닌 것처럼 함수식을 묘사함으로 합성함수의 극한을 계산하도록 유도한다.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이고, 속도를 적분하면 위치가 된다. 관련된 내용을 '물리학I' 과목에서 세부적으로 배운다. 물리학I을 듣지 않는 학생이어도, 수학II에 나오는 속도와 미적분은 충분히 다룰 수 있을 정도로만 평가를 제작하도록 교육과정은 안내하고 있다. 따라서 교과서에서도 미분을 배우면서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가 된다'는 것과, 적분을 배우며 '속도를 적분하면 위치가 된다'는 것을 명시한다. 물론 추론을 통해 '그러므로 가속도를 적분하면 속도가 나오며, 위치를 미분하면 속도가 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적분상수와 연속성과 같은 세밀한 주제를 교과서 설명 없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교육을 통해 그것을 채운다. 공교육에서는 가르치지 말도록 교육과정이 편성되기 때문이다.
22번 문항은 현재의 수능 수학 영역에서 가장 변별력이 높은 문항이다. (1번부터 22번까지가 공통문항이고, 23번부터 30번까지가 선택과목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통과목에서 가장 높은 변별력의 문제가 출제되고, 그것이 22번 문항이다.) 이론상으로는 인문계열 학생들도 풀어낼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미분과 합성함수를 섞어두었다. 물론 3학년 미적분 과목에서 다루는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표현을 본 적조차 없는 인문계열 학생들과 교과서를 통해 합성함수를 미분해본 경험이 있는 자연 계열 학생들이 과연 같은 준비를 마치고 22번 문제를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인문계열 학생들이 더 공부하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 물음이 남는다.
수능 수학 영역 안에서만 말하고 싶은 주제가 너무 많다. 매해 15번 문제는 수열의 귀납적 정의 문제가 출제된다. 2~3가지 경우의 수를 구분하여 7~8번의 시행을 거쳐야 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즉, 최소 14가지 ~ 최대 24가지의 경우를 분석해야 한다. 100분의 시험 시간 중, 15번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로 꼽히지조차 않는다. (매해 같은 출제 경향의 문제가 나오기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문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유형을 알아도 이 문제를 풀어내는데 최소 10분은 소요된다.) 매해 13번 문제는 거듭제곱근의 정의를 쓸 수 있어야만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된다. 수학에서 거듭제곱근은 무척 중요한 개념이지만, 거듭제곱근을 풀어내는 것이 '대학 수학 능력'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의문이 남는다. 10분 정도 안에 14~24가지의 서로 다른 경우를 분석해내는 것이 '대학 수학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현직 교사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모은다. 현재의 수능과 대입 체계 아래에서는 어떠한 고등학교 교육의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을 현장의 모든 교사는 입을 모은다.
참고문헌.
김성훈. (2014). 『대학수학능력시험 20년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8] 『수학과 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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