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루. (2022). 『ㅈㅅㅋㄹ』. 선스토리.
11월 23일, 고2 학력평가 1교시와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OMR 카드에 감독 확인 도장을 찍지 않았다면 국어 영역 마치기 전에 다 읽어낼 수 있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고, 문장은 읽기 쉬웠다.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제목이라 더 낯설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연히 제목은 '자살클럽'을 숨기기 위한 표현이었다. 왜 이런 제목을 지으셨을까, 출간 예정 구매를 하고 프리뷰를 쓰는 내내 고민이 되었다. "그의 모든 것이 다 좋아서, 하나하나의 행동까지 모두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가 하는 행동은 어떤 것이든 그 의미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온전히 지지하고 응원한다."라고 프리뷰에 글을 남기는 동안에도 '이유가 있으셨겠지. 무서운 제목을 정하신 이유가 있으실 거야.' 속으로 되뇌었다. 아이들의 죽음을 만나셨을 때, 오 선생님은 과연 어떤 마음이셨을까. '온 세상이 두 번 사라지는 느낌'(223쪽)이셨다고 말씀하시는데, 도저히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다시는 같은 일을 만나지 않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제목을 정하셨겠다.
나는 국어영역 독해하듯 책을 읽는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다.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상관없이, 그 작품을 감상함과 동시에 플롯을 머릿속에서 정리해야 한다.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복선 혹은 또 다른 장치들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분위기를 예측하고, 캐릭터들의 태도와 글의 전개 방법을 분석한다. 이런 습관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소설의 끝을 바로 예상할 수 있었다. 은재와 경식, 소유의 삶이 드러나자 그 결말이 하나씩 머리에서 펼쳐졌고 그 예상은 모두 맞아떨어졌다. 상상했던 내용들이 소설 속에서 그대로 펼쳐지니, 마치 내 마음을 저자에게 들킨 듯, 부끄럽고 손발이 오글거렸다. 동화와 같은 결말이었다.
학교에 다니며 들었던 학생들의 많은 마음 어려운 삶의 이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행복한 결말들이었다. 한 사람의 등장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가 시작된다. 이전의 상처를 덮고도 넘칠 사랑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미 깨졌던 가족과 그들이 깨뜨린 또 다른 가족이 함께 사랑을 회복한다. 꿈만 같은 일이다.
오 선생님께서는 10년 넘게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셀 수 없는 아픔들을 직면하셨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아픔을 만나면서도 그 아이들을 향한 꿈 꾸기를 멈추지 않으셨고, 마치 그 소망들이 이 소설 속에 모여있는 듯했다. 깨진 가정이 회복되고, 죽고 싶다 느끼는 아이들에게 사랑이 전해지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사랑을 전하게 되는 세상을 소설로 이루어주셨다. 이것이 소설이라는 허구에만 갇히지 않고, 모두 현실이 되어 아이들에게 죽음이 아니라 삶을 선물해주면 좋겠다.
글 중반부터 등장하는 김민지 경감님의 삶을 따라 살아내고 싶다. (하지만 학생들의 삶을 살피느라 '민지'와 같은 소중한 가족을 잃는 실수는 전혀 따라 하고 싶진 않다.) 은재도, 경식도, 우빈이도 경감님 앞에서 대하기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어렵지 않은 어른이 되는 것이 내게는 참 어려웠는데, 이것을 너무나 편하게 해내는 경감님의 모습에서 오 선생님의 모습이 비친다. '담임 교사'가 그러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수학 교사'가 그러한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학생부 종합 전형이 여전히 입시의 주류이고, 그렇게 생활기록부를 담보 잡힌 학생들이 담임 교사나 교과 담당 교사에게 자신의 마음속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오 선생님께서는 본인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해 주신다.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새벽 2시까지 들어주신다. 경감님이나 나는 절대 해낼 수 없다. (나는 다음날 06:00에 집을 나서야 한다.) 마찬가지로, 김 경감님 또한 본인만 할 수 있는 일을 맡는다. 제복이 만들어내는 권위로 시민들은 전할 수 없는 교훈을 전해주신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학교 울타리 속에 갇힌 나 또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 여전히 학교라는 높고 견고한 울타리에서 '아직은 보호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나가서 삶을 살아낼 근육을 길러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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