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중에 언급된 ChatGPT를 활용한 생활기록부 작성은 실험만 진행한 것임을 밝힙니다. 2022 생활기록부에 ChatGPT를 활용하여 내용을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정직과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을 가장 높은 가치로 삼는 저와 친한 다른 학교의 선생님의 실험입니다.)
2016년 알파고 이후, OpenAI의 ChatGPT는 다시 한번 인공지능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이미 국제학교에서 ChatGPT를 사용하여 과제를 제출했다.(미주 1) 대학교 계절학기에서 과제를 ChatGPT로 제출했고, A+ 점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학생의 이야기도 등장했다.(미주 2) 2023학년도부터 어떻게 과제를 받아야 할까 고민하던 내게, 가장 친하고 가치관이 닮은 한 수학 선생님께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저 지금까지는 학생들의 과제를 ChatGPT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만을 고안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관찰 내용(혹은 제출했던 보고서의 일부, 혹은 보고서 전체)을 짧은 열 개의 문장으로 표현하여 입력하여 주면 그 학생에 대한 평가가 출력되었다. 이를 생기부의 문체에 맞게 개조식으로 명사형 어미로 다듬어주기만 하면 평소 우리가 사용해 왔던 생활기록부의 내용이 그대로 완성되었다. 학급에서 발견한 학생을 향한 관찰 내용을 입력하면 '행동 특성 종합 의견'이 완성되고, 교과 수업에서 발견한 학생을 향한 관찰 내용(그리고 탐구 보고서)을 입력하면 '교과별 세부 특기 사항'이 완성된다.
이를 긍정적인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결론도 낼 수 있었다. 애초부터 '세부 특기사항'을 작성하는 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교사가 수업을 구성할 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어느새부턴가 '기록'이 들어왔다. 교과내용의 이해를 확인하고 피드백하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기록'을 위한 평가가 교사의 가장 큰 업무가 되었다. '기록'보다는 평가에, 평가보다는 수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겠다는 기쁨이 생긴 지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더욱 끔찍한 소식을 직면했다.
평가와 기록이 대체되는 것을 넘어서, 이제 AI는 수업 모델까지 스스로 세워낼 수 있었다. 의사와 판사의 역할이 AI로 대체될 거라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교사의 역할이 AI로 대체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왔었다. ChatGPT를 보며, 안일하게 생각해 왔던 '교육'을 향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코로나를 겪으며,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감당했던 역할 중 무척 큰 부분 중 하나로 '보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주 크게 깨달았다. 동시에, 교사들은 무척 자존심이 상했고, 기분이 나빴다. 고작 학교를 '내 퇴근 전까지 아이들을 저렴하게 맡기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자녀들을 초등학교 1학년까지만 키워내면, 부모가 학부모가 되면서 학부모들은 일과시간을 허락받게 되었다. 다시금 직장 등에서 학부모 자신의 삶을 8시간 동안 허락받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등교가 중지되며,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며, 학교에 가지 않는 자녀들이 집에서 방임되는 현장을 우리는 여실히 직면했다. 우리가 학교에 기대했던 점은 사실 '똑똑한 학생이 되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가장 어렵고 많은 내용을 배우던 70년대의 교육과정도, 모든 교과내용을 도서관에서도 다 익힐 수 있었다. 지금도 유튜브나 칸 아카데미 등, 교육 콘텐츠는 언제나 차고 넘친다. AI에게 역할을 넘겨주기 전에도 교육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요인들은 많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당분간은 AI에게 역할을 곧바로 넘겨주게 되지는 않을 듯하다.)
여전히 기분이 나쁘지만, AI가 대체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하겠다.
나는 조별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학 수업에서의 조별 활동은 그 성격이 타 교과와 많이 다르다. 수학 실력이 뛰어난 학생의 일방적인 안내로 조별 활동이 이루어진다. 수학 1등이 속해있으면 나머지 구성원들은 일단 안심한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은 오롯이 '자신의 성적'을 위해 아이들을 버스에 태워 이끌어간다. 결국 누구도 원치 않는 방향성의 학습이 이어진다. (물론 멘토 학생들은 멘티 친구들의 학습 내용을 보완해 주면서 '완성학습'을 이루어낸다. 긍정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 풀이 이외의 다른 탐구활동에서도 그러할까?)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온전한 개별화'를 추구했다. 한 명의 아이의 탐구 보고서 아이디어를 위해 1시간이 넘는 자료조사를 하더라도, 그 학생에게 꼭 맞는 아이디어를 함께 찾았다. 모든 과제를 개인 보고서로 작성하도록 과제를 부여했다. 세 번의 서로 다른 보고서, 10페이지를 훌쩍 넘기기도 하는 보고서를 전부 개인이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그 보고서마다 피드백을 주었다. 학생도, 그리고 나도 서로 힘이 드는 방향성이었지만, 유익은 있었다. 그리고 이 역할을 ChatGPT가 나보다 더욱 훌륭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개별화와 맞춤학습은 이제 AI에게 넘겨주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비슷한 성적대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조별활동은 어떤 활동들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수학 학업 성취가 낮은 친구들이 모인 모둠은 그대로 교육활동이 멈출지도 모르겠다.(모든 교사가 두려워하는 교실의 모습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얼마나 더 발전된 모습의 나를 만들어내는지를 평가하면, 그들에게도 소망이 조금은 생기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 이미 학습 목표가 도달된, 높은 수준의 성취도를 가진 학생들에게 또 다른 발전된 모습을 강요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교육은 너무 어렵다...
(미주 1)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209/117801590/1
(미주 2) https://www.sedaily.com/NewsView/29LPKL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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