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2021). 『완벽한 사과는 없다』. 뜨인돌, 파주시.
출간 알림 신청이라는 것을 해서 읽는 작가가 두 명 있다. 한 분은 오선화 선생님, 다른 한 분은 김혜진 선생님이시다. 김혜진 선생님을 소개할 때, '지금의 나를 있게 한'이라는 수식어를 반드시 붙인다. 『프루스트 클럽』을 읽은 2009년 이후 12년간 김혜진 선생님의 10권의 서로 다른 작품을 모두 사서 읽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을 넘어서서 정서와 말투 그리고 생각하는 방법까지 대부분의 '삶의 태도'를 김혜진 선생님께 배웠던 듯하다. 체언으로 문장을 마치는 습관까지 김혜진 선생님께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기에 산 책을 쉽게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두 번째 단원까지 읽어 내려가는데, 내 마음이 채 준비되지 못했다.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표지의 '몰랐다. 모르길 바랐다.'에서부터 두려웠다. 김혜진 선생님께서 다루어오던 내용과는 그 근간이 조금 달랐다. 관심갖지 않아도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작고 사소한, 하지만 개인의 마음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교실에서의 이야기를 다뤄오셨던 김혜진 선생님의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 교실 공동체에서의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떠한 방법으로도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폭력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책 뒤표지에 쓰여 있었지만, 나는 그것 또한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모든 쉬는 시간에 교실에 가려고 노력한다. 고1 담임선생님께 배웠던 이 습관을 놓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학교폭력의 예방'이다.) 그렇게 3개월을 미루다, 수능 날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학교폭력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든 상관없이, 남겨진 아이들의 삶은 이어진다. 모두가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들에게만 이야기를 집중하지만, 이야기는 두 사람에게만 남겨지지 않는다. 약하든 강하든 그 흔적을 남긴다. 리하나 지호에게는 물론이고, 다온이와 지민이에게도. 그렇게 다시 이야기들이 만나며 새로운 상처가 생기기도, 새로운 마음을 얻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 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그들의 마음을 인정해주고 싶다. 더 나아가, 그들의 마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학을 못 할 수 있다. 문장을 바르고 빠르게 못 읽을 수도 있다. 억울함을 말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이 둔한 것이 아니며, 생각이 짧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관찰 가능한 현상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을 탐구할 때(수학을 공부할 때)나 필요하다. 사람을 볼 때는 그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들으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인가. 그 순간에 나는 리하의 강함을 보았다. 리하의 약함을.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강한가를.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서로의 손을 잡아야 했다. 서로가 놓지 않으리란 걸 믿어야 했다. 나는 믿었고, 말했다.
(p.159 같은 책.)
아무리 희미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겉으로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날카로운 바늘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더라도, 단단한 껍데기로 마음을 감추고 있더라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한다.
세상은 빨라지고 편해지는데, 그럴수록 '함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문유석 판사님의 이야기가 다시 한번 생각난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 관문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혼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279 문유석(2015). 『개인주의자 선언』.)
김혜진 선생님도 글을 모두 쓰고 난 이후에 발견했다 말씀하신다.
세 번째 사람이 상황을 바꾼다.
(p.167 김혜진.(2021). 『완벽한 사과는 없다』.)
묶여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지민이와 지호의 관계도 다온이로 인해 달라진다. 이 세상 어떤 사랑도 채울 수 없을 것 같았던 리하와 지호 사이의 관계도, 지민이가 그 회복 가능성을 비춘다. '나와 관계 없으니까'로 취급하고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직면하기로 결정한 지민이의 양심으로 인해 변화는 시작된다. 어렵다. 학생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하지만, 아이들 사이의 관계를 바라볼 때마다 내 안에 이 마음이 생겨난다. '그들 사이의 일인데….' 서로가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고, 깊이 관계하기로 다시 결정한다.
PS.
읽는 내내 지호가 등장하게 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지민이는 결국 지호를 찾아 나설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염려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지만, 책에서 결국 지호는 등장할 수 없었다. 김혜진 선생님도 참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여기까지가 교사로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가장 바른 방향성 같다. 리하의 마음과 몸이 무엇보다 먼저였고, 그것을 지민이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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