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2018). 『당신이 옳다』. 해냄 : 서울.
기윤실 교사모임에서 19년도 2학기에 읽기로 결정했던 책이다. 다른 선생님의 ‘너무 좋아 함께 읽고 싶어요’라는 말에 의지하여 읽었는데, 그렇게 말한 이유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던 책이다.
인구는 점차 줄어드는데, 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주목하지 않고 사람을 그림자 취급할까? 정보 통신 매체는 더 발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정도로 발달하는데 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주목하지 않을까? 많은 의문이 올라오는 와중에, 가장 많은 청년 고독사가 강남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은 마음을 참 안타깝게 만든다.
존재에 집중할 것. 온 마음을 다해 존재에 집중할 것. ‘온 체중을 실어’ 존재에 집중할 것. 쉽게 결론 낼 수 있는 표현이지만, 과연 그렇다면 그 ‘존재’라는 것은 무엇일까?
엄청난 통찰. 그리고 쿵. 하는 마음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식의 또다른 경계가 깨어지는 느낌. 형식주의가 깨어진 수학 학계와 불완전성 정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과 감정이 드는 시간이었다.
존재의 핵심은 감정, 느낌,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치관과 신념이 아니다. 성향과 취향이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유명한 사람의 유명한 질문에 대한 답 또한 그 사람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좋아하는 정당과 대통령,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운동이 그 사람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태어나 자라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겪으며 생겨난 느낌, 감정, 그리고 마음. 그것이 그 사람의 존재를 설명한다.
그 감정은 자신도 잘 모른다. 세밀히 스스로가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비추어진다. 그러는 찰나에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이 날아가게 되면 그 감정은 다시 두꺼운 보호막은 덧씌우게 된다. 그게 반복이 되면 이제 감정을 찾을 수도 없게 꼭꼭 숨어 본인도 찾지 못하게 된다.
이성과 합리로 삶을 일구어가던 나에게 위의 이야기는 많은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할 때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그리고 실제로 버릇처럼 된 "나는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가 실제로 그런 것이겠다.
욕설로 마음이 다친 사람보다 바른말로 마음이 다친 사람을 과장해서 만 배는 더 많이 보았다고 말하는 정신의학자이자 치유자인 저자의 말을 보며 많은 찔림이 온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욕설 한마디 하지 않으며 ‘바른말’만 하며 살아간다 생각해왔던 나는 존재의 핵심이라 생각해왔던 가치관을 쿵. 하고 내려놓는다. 그리고 새로운 존재의 핵심을 찾기로 한다.
“왜 그랬니?”라고 다그치는 것이 공감의 시작이 아니다. 그 표현이 함의하는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럴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라고 그렇게 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던 것이지?’의 질문을 하는 것. 궁금하면 물어보면 된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가 갈 때까지 물어보자.
정신과 의사의 지위와 삶을 내려놓은 저자의 말이 참 인상적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째서 우울증인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의 불안과 공포가 왜 우울증인가. 은퇴 후의 무력감과 짜증, 피해 의식 등이 어떻게 우울증인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의 우울과 불안을 뇌 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은 비정하고 무책임하다.
(p.90. 같은 책.)
저자는 우울증을 진단의 휴지통이라 부른다. 미국 표준 진단체계인 DSM-5의 기준 여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불면 & 과다수면
2. 식욕부진 & 과식
3. 활력저하 & 피로감
4. 자존감 저하
5. 집중력 감소 & 의사 결정 곤란
6. 절망감
이 중에 두 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우울증으로 진단을 받는다. 어떤 의학의 분과에서도, 어떤 질병도 ‘증상’으로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배가 아무리 아파도 배가 아픈 증상으로 진단하여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진통제는 줄 수도 있겠다.) 위염인지 위궤양인지 위암인지 모르고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 정신의학과에서만 ‘증상’을 보고 체크리스트 식으로 진단을 내린다.
책 표지에 ‘적정 심리학’이란 표현이 있다. 사람은 배가 고플 때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의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자격증이 있는 정신의학과 의사를 찾아갈 수는 없다. 상담사를 찾아갈 수도 없다. 식사가 전문가들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일부인 것처럼, 마음이 필요로 할 때 전문가가 아니라 바로 곁의 사람을 찾도록 하는 책이다.
새로운 ‘인생 책’이 되었다. 책꽂이에 꽂아두고선 ‘아 이 책의 방향성이 무엇이었지?’ 할 때마다 찾아 들게 되는 다른 인생 책들과는 조금 다르게,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이 되겠다.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마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주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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