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화)
기독교 학교인 우리 학교는 절기 예배를 드린다. 4월 중에 부활절, 10~11월경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성탄절 예배를 드린다. 세 절기 예배 중에 나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배는 단연 부활절이다. 세계 4대 종교의 성인 모두 그 생일이 있지만, 4명 중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한 명뿐이다. 탄생일을 기념하는 무게보다, 부활절을 기념해야 하는 가중치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한 부활절 예배를 위해, 1교시 예배 시간 이외에도 2교시~7교시의 수업 시간을 10분 단축하였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1교시 예배 시간 2부 순서로 특별 행사를 진행하였다. 절기 예배를 드리고 강당, 혹은 각 교실에서 특별 행사를 진행한 뒤 일찍 하교할 것으로 기대했던 나는 정규 수업 일과표와 같은 시간에 학교를 마치는 것이 조금 매우 당황스러웠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이후에 정규 수업을 모두 진행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그저 수업을 쉬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가치 있는 것,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한 가지는 정해진 일정과 삶의 양식을 깨어내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한글날이 공휴일이 아닐 때 우리가 갖는 한글날에 갖는 마음가짐과 등교하며 한글날을 기억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학교가 무엇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는지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것이지 않을까? 개교기념일에 학교가 쉬고, 성탄절에도 학교가 쉰다. 부활절은 정규수업을 한다. 부활절을 얼마나 가치 있게 여기는 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여러 복잡한 마음가짐 속에서, 전날부터 부활절 예배를 준비했다. 야자 교실이 아니었던 우리 반이었기에, 전날 밤에 미리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을 챙겼다. 부활절 달걀을 기념하기 위해 달걀 과자를 준비하고, 2주 전부터 써왔던 손 편지를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줄 책을 준비했다. 3월에 작가님께 연락드려, 학생 한 명 한 명의 저자 사인본의 책을 요청해 구매했다. 얼굴도, 삶도 모르는 우리 반 21명을 위한 책을 정성껏 준비해주셨다. 편지의 내용을 채우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초안을 쓰고, 수정했다. 옮겨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2주 전부터 천천히 편지를 썼다. 학교가 부활절의 가치를 충분히 안내하지 못한다면, 그 부분을 내가 채우고 싶었다.
방송실에서 예배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 이번 부활절 예배도 반 학생들과 예배하지 못했다. 학생들과 예배당 객석 앞에 나와 뛰며 율동하며 예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상한 마음으로 시작한 부활절 예배였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은혜는 비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틈을 채운다.
친구가 교회를 다니는데, 교회 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친구가 혹시 있나요? 그런 친구와 가까이하지 마세요. 그 친구는 당신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교회 다니는 친구가 귀찮고 짜증 나게 교회 가자는 이야기를 계속 하나요? 교회에 함께 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친구는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것이에요. 더 귀찮게 해도 된답니다. 고은식.(2022).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자족하기를 훈련한 덕분에, 이 땅에 소망이 몇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내는 것이 편하다. 아이패드를 갖고 싶지만,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집에 컴퓨터를 하나 두고 싶지만, 없어도 학교 컴퓨터를 가져와서 살아내면 살아낼 수 있다. 넓은 집으로 이사갈 수 있지만, 조금 더 14제곱미터의 원룸에 살아보려 한다. 하지만 놓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소망이 있다. 이들과 24시간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지만, 대신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 10년마다 1시간씩만 만날 수 있어도 괜찮다. 10^100년 동안 살아낸다면 10^99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그들에게 영원을 알려주고 싶다.
사족.
아무리 저자 사인본이라 해도, 중간고사 열흘 전에 책 선물이라니 얼마나 싫었을까. 달걀 과자는 마음에 들었을까. 그래도 교회에서 후원해준 덕분에, 부활절 예배 때 맥반석 달걀은 받을 수 있었다. 편지의 글씨가 예쁘지 않은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던 부활절이었다. 그리고, 나름의 은혜를 내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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