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를 써 내려가면서, 해마다 한 명 이상은 보게 되는 듯하다. 2022학년도를 한 달 남짓 남긴 1월 31일, 나는 익명의 학생에게서 『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저. 1906.), 그리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저. 2007.) 독후감 두 편을 받았다. 자율활동에 '슬기로운 독서생활'이라는 활동으로 생기부에 기입할 내용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독후감을 읽으며, '와, 이 학생은 이런 생각과 마음으로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마음을 갖는 그날 하루 종일이었다. 자율활동, 행동특성종합의견, 그리고 진로활동까지 해내야 할 생기부가 너무 많았는데, 하루종일 먹먹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22학년도의 그 학생은 학급에서 맡은 역할도 컸다. 왜인지 이 학생과 대화한 시간은 1년 전체를 합쳐도 30분을 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그 학생의 마음을 늦게 깨달은 이유가.
비슷한 기억은 23학년도 연말에도 있었다. 학년말에 급하게 진행된 시 필사 프로젝트 활동지를 하나씩 읽으며, 방학을 사흘 남겨둔 정신없는 날이었지만, 하루 종일 따뜻한 마음을 품에 두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익명의 봉사활동 소감문을 읽는 시간 동안 따뜻한 마음을 하루종일 가지고 가던 방학의 하루가 생생하다.
생기부를 채우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인데, 아이들의 소감문 하나, 보고서 하나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과제를 하나씩 해치우는 그 순간, 학생들은 '선생님들께서 이 글을 과연 읽으실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지 않을까? (학기말, 교사는 수백 개의 보고서를 읽으며 하나씩 생기부를 완성한다. 제출받은 보고서를 읽는 시간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를 읽으시든, 그렇지 않으시든,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정리할래.'라는 태도로 보고서를 쓰는 친구들이 꼭 몇 명은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의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그런 하루였다, 오늘도.
'학생들의 어떤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이 오는걸까?' 오늘 하루종일 이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투명하게 밝히는 글을 읽고 있는 그 순간인 것 같다. '내 생각과 마음이 선생님들께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써 내려간 글, 혹은 '이런 감상들을 남기면 나를 향한 평가가 더 좋아질 거야.'라는 또 다른 페르소나를 덧씌운 글을 읽을 때는 이와 같은 감동이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는 간다.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생활기록부로 대입이 많이 결정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마음을 오픈하는 것이 결코 쉬울 수 없다. 친구보다 나 스스로를 먼저 위하는 마음 씀씀이를 가진 연약한 마음을 평가자인 교사에게 오픈하는 강심장을 가진 학생은 얼마 없을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삶을 계속 관찰하는 교사가 그 보고서를 읽다 보면, 포장된 감상과 느낀 점들은 잘 포장되어 있음이 이미 잘 느껴진다. 너무 잘 느껴져서 가끔은 슬프다... 포장된 아이들의 감상으로 생기부를 채우며, 무력감과 슬픔이 쌓인다. '이렇게까지 대학을 보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익명의 한 아이가 책 『보이지 않는 이야기』(조현대 저. 2019.)를 어느 교과의 독서 과제로 읽었다. 읽으며 이 학생이 느꼈던 마음, 감정, 감각들이 생생히 전해져 왔다. 이 독서록 과제는 한 교과의 과제로 제출된 것이었고, 그 교과의 교과목별 세부 특기사항에 아이가 느꼈던 마음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렇게 특기사항을 세심하게 담아주신 해당 교과 선생님께 무척 감사하다!) 언젠가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는데(제출하지 않을 것임에도 감상문을 써두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또다시 놀랍다!), 올해 우연히 또 『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저. 2018.)를 읽었다. 세계의 빈곤과 보건의료 실상에 대한 두 서로 다른 방향성의 책을 읽고, 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읽은 한 익명의 학생은 과연 어떠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 그 학생은 내게 도합 19페이지, 4편의 서로 다른 보고서를 제출했고 작은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그 모든 보고서를 읽었다. 이를 읽는 내내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듯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생기부와 거리가 먼 활동이지만... 진로를 생각하지 않고 흥미로워 보이는 내용들로 보고서를 완성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요...'라고 꼬리말을 남기는 학생의 마음이 대견하다. 아니,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
4편의 서로 다른 보고서를 인과관계 순으로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을 읽으며 세계의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2) 『팩트풀니스』를 읽으면서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가? 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남기며, 먼저의 책과 정 반대의 논지를 펼치는 서로 다른 두 책에 대한 분석을 남긴다.
3)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읽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임에도 앞이 잘 보이는 사람을 먼저 위하는 마음과 사회를 더 나은 방향성으로 만들어가려는 삶의 태도에 큰 감명을 받는다.
4) 생기부 자율활동에 기입할 주제 탐구 활동으로 '당사자성'을 고려하는 따뜻한 기술이 필요함을 제언한다.
딱딱하게 요약했지만, 네 보고서의 큰 흐름은 한 가지다.
가까운 사회적 약자와 먼 곳의 빈곤층을 위해 나의 어떠함을 내어주고자 하는 마음.
언젠가 몇몇 학생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그렇게 조금씩,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매일 더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삶을 같이 살아내보는 게 어때?
(어렵겠지만... 어려우니까 같이 하자! 혼자 하지 말고.)
그런데... 어쩌면 내가 너에게 더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어.
넌 이미 삶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니까."
매일매일 더 사랑하기로 결정하면서 삶을 살아도, 매 순간 어려움을 만난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 나도 이정도인데 아직 미래의 불확실성에 마음이 잠식되어 있는 19살 친구들이라고 다를까? 더 불안할 게 당연한데. 그렇게 '내가 먼저 이들을 사랑해야지!'라고 생각하는데, 내 앞에 놓인 학생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사랑이 습관화되어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나이고, 배우는 사람은 학생들인데, 매 해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배운다.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며, 이러한 따뜻한 마음을 계속 마주한다. 교사는 참, 감사한 직업이다. 매 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사랑을 배우기 가장 좋은 직업이다. 그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사랑스럽고, 마땅히 사랑 받을 만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섯 번째 편지, 행동특성 종합의견 (0) | 2024.03.03 |
---|---|
꽃과 함께한 23학년도 졸업식. (0) | 2024.02.21 |
어느때보다 추웠지만, 어느때보다 따뜻했던 학교에서의 성탄절 (1) | 2023.12.24 |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 2024 수능 감독관 후기 (1) | 2023.11.17 |
세 번째 학업 중단 (0) | 2023.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