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쉰다는 것
수능을 마친 20살 청년들과 독서모임을 햇수로 2년째 갖고 있다. 스무살의 첫 열흘 남짓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과 1월에 함께 읽을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제목에 이끌려 책을 정한 듯한데,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독교 신앙서적이었다. 제목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읽다보니 당황하기도 했다. 독서모임 구성원 중 절반 가까이가 비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잘 쉰다는 것에 대해 논할것처럼 적혀있지만, 근원적인 질문인 '왜 쉬는가?'를 더 깊이 고민하게 했다. 사실 '쉼' 자체는 각자 개인에 따라 쉬는 방법이 다양할 것이고, 그 방법론을 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저자가 판단한 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도, '어떻게 쉬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많이 올라오지 않기도 했다.) 오히려 '왜 이렇게까지 하며 쉬어야 하는것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올라오왔다.
'왜 쉬는가?'에 대한 나의 답변은 '생산성 향상'이겠다.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를 자립시키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은 매일 8시간만 투자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8시간만 일한다면, 의식적인 '쉼'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하루에 8시간만 근무한다면, 남은 16시간의 다양한 과업들 중에 쉼의 시간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로부터 비롯되는 무수한 집안일도 결국 22시에는 끝나는 편이다. 그리고 출근은 6시 이후이므로, 적어도 8시간의 시간이 보장될 것이다. 그 시간에 보내는 대부분의 활동이 '잘 쉰다는 것'의 범주에 들어갈테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그리고 학생들을 대면하기위해 8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8시간 근무가 10시간, 13시간 근무로 이어지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잘 쉬는 것'이 무척 필요해진다. 13시간 근무하고 22시에 퇴근한 이후, 밀려있는 집에서의 과업을 마친다면 다음날의 일과를 처리하기 위한 쉼이 무척 필수적이겠다. 통상적으로 8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나이기에,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잘 쉬는 것'이 무척 필요하다. 다음날 다시 몸을 일으켜 새로운 일을 세우기 위해, 나는 쉰다. 이것이 '왜 쉬는가?'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왜 쉬는가?'의 질문에 이어, '누구를 위해 잘 쉬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떠오른다. 나는 그럼 누구를 위해 잘 쉬어야 할까? 물론 누구보다 나 스스로를 위한 쉼이겠다. 나를 제외하고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상은 가족들이다. 책에서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을 위해 잘 쉬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맺음이 곧 쉼이고, 그 쉼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쉴 것을 말한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주변의 '관측가능한 존재'들 먼저 떠오른다. 먼저는 아내와 이어서는 아기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위해 쉴 것이 필요하다. 이어서는 학교에서 만날 학생들이다.
이어서 떠오르는 질문은 '무엇을 위해 쉬는가?'이다. 쉼의 본질적 이유가 생산성 향상이라면, 그렇게까지 생산성을 향상시켜야만 하는 이유는 내게 무엇일까? 사립학교 교원이 일을 8시간보다 더 한다고 해서 받게 되는 금전적인 이익은 시간당 만 원 남짓의 초과근무 수당뿐이며, 이것도 교내에서 근무한 내용만 인정되기에 집에서 추가적인 교재연구와 학급운영 업무는 인정받지 못한다.
"작은 나의 행동들을 통해, 학생들이 사랑받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기 위해 8시간 일하는 것은 '교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이 가져야만 하는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과 노력은 '돈을 벌기 위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일을 자처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나는 법으로 정해진 시간 이후에도 일하기를 자처한다. 그렇게 학생들에게 사랑받음을 느끼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하나님 나라도 이 땅에 조금씩 더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21년 1월, 지금의 법인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전임교 교감선생님께 편지(카드)를 받았다. 전문을 옮긴다.
선생님,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의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런지 헤어짐이 너무 아쉽고 섭섭합니다.
항상 긍정적이시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 교사로써 본받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디가시나 예수님의 향기가 뿜뿜 풍겨나는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실 겁니다.
선생님의 미래를 축복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강건하시길 바랍니다.
편지를 볼 때마다, '내가 사랑이 많나?' 돌아보게된다. 그리고 글을 읽을 때마다 다짐한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둘 다 애쓰고 싶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사랑이 많은 사람을 모두 갖기위해서는 쉼을 포기해야할 것이고, 그럼 장기적으로는 나의 삶이 무너질테다. 만약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면 사랑 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고, 이를 위해 기꺼이 다른 것들을 대가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지금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있지는 않지만,
돈을 적게 벌더라도 관계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Review -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 학교에서는 해낼 수 없는 것들 (0) | 2025.01.24 |
---|---|
죽음이라는 개념이 갖는 의미와 무게들 (0) | 2025.01.20 |
글은 원래 주관적이라서 빛나는 겁니다. (0) | 2025.01.16 |
불가능한 일 상상하기 (0) | 2025.01.12 |
선물 받은 이성(Reason)으로 믿음을 설명하기 (9)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