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서평

생명은 처음부터 수학을 활용해왔고, 이제야 인간이 그 사실을 발견했다.

꿈잣는이 2026. 5. 10. 00:10

김재경(2024).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동아시아.

 

 

  이 결과를 보고 생명 현상의 현명함에 다시 한번 경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렇나 메커니즘이 없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즉, 핵 주변에 먼저 도착하는 피리어드 단백질은 핵 안으로 먼저 들어가 클록 단백질과 결합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학생이 서울 외각에서 매일 아침 복잡한 교통 체증을 뚫고 서울 중심부에 있는 학교를 향한다면, 이 학생이 학교 정문에 도착하는 시간은 일정할까요? 꽤나 불규칙할 것입니다. 하물며 확산(diffusion)을 통해 핵 주변으로 움직이는 피리어드 단백질은 어떨까요? 빨리 도착하면 몇 분 안에 도착하겠지만 오래 걸리면 몇 시간이나 걸릴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날은 피리어드 단백질이 몇 분 만에 핵 안으로 들어가지만, 어떤 날은 몇 시간 후에나 들어갈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클록 단백질들과 결합함으로써 안정적으로 24시간 주기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한편 하나의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 주변에 도착하는 시간은 매일 크게 변하지만, 피리어드 단백질 수천개가 핵 주변에 도착하는 평균 시간은 매일 유사할 수 있습니다. 피리어드 단백질 하나가 핵 주변에 도착하는 시간의 분산보다 피리어드 단백질 1,000개가 도착하는 평균 시간의 분산이 1,000배 더 작기 때문입니다.(그림 3.23) 개인은 부정확하지만 집단은 매우 정확할 수 있다는 이 원리를 생체 시계가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108-109쪽.

 

  18세기에 발견되고 도입된 확률분포를 이미 생명과 세포는 너무나 당연하게 활용해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21세기에서야 발견하게 되었다. 18-20세기에 발견한 수학적 개념들은 이미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모든 분야에 이미 다 활용되었을 거라 생각해왔는데, 여전히 21세기인 지금도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적용되어지고 있음이 놀랍다. 여전히 아직도 발견된 수학 개념이 여러 분야에 계속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테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초적인 수준이고, 인공지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데이터를 기하 공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때 필요한 수학이 바로 행렬과 벡터이지요. 예전에는 문과생도 행렬을 배웠고 이과생이라면 누구나 벡터를 배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마치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행하는 듯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73쪽

 

  융합을 대하는 저자의 직관과 함께, 우리나라 현재 교육과정과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슷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학생의 자율과 선택을 강조하는 것이 '교육적'일까? 고민해볼 주제다. 벡터를 배울지, 환율과 한계비용을 배울지 그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17살 학생이 선택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까?

 

 

  FDA 가이드라인 수식이 지닌 문제의 해결책은 2차 방정식 근의 공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을 왜 수십 년간 찾아내지 못했을까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문제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것은 약학자들이, 두 번째 것은 수학자들이 잘하는 것이지요. (중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약학자들과 융합 연구를 진행한 덕분이었지요.
  융합 연구를 자주 하는 만큼, 강연이 끝날 때마다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녀를 어떻게 하면 융합 연구자로 키울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입니다. 저의 대답은 늘 똑같습니다. 융합 연구자의 두 가지 특성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첫 번재 특성은 대화를 유쾌하게 이어가는 것입니다. (중략)
  두 번째 특성은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219-221쪽.

 

  올해 고3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는 융합수업을 진행한다. '학교 자율적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지 않은 교육활동을 진행하며, 교과를 융합한 수업을 진행한다. 책의 언급과 같이, 많은 학부모님들이 '융합 연구자'에 참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런데 이 점 또한 나는 늘 의문이 든다. 한 사람이 전혀 다른 두 분야를 동시에 완벽한 연구 성과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영역을 융합하여 어떤 연구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 가지를 무척 깊이 연구하는 것조차 무척 힘겨운 일인데, 왜 우리는 늘 '융합'이라는 좋아보이는 단어를 쫓아가려고 할까?
  미분방정식은커녕 기초적인 미적분 개념도 완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수학과 다른 분야의 융합을 다루어야만 하는 '융복합적 인재'를 고등학교에서부터 준비시켜야만 하는걸까? 의문이 늘 남는다.

 

 

  우리는 미적분학이 생명 현상을 디지털화하고, 복잡한 실험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심지어 전염병의 확산을 예측하는 데 이르기까지, 수많은 방식으로 우리 삶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수학이 단순한 숫자와 공식의 집합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강력한 언어임을 입증합니다. 수학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이며, 그 눈으로 복잡한 현상들을 더욱 명확하고 근본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책이 수학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기를 바랍니다. 수학이 지닌 보편성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어떻게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론을 현실의 개선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었기를 바랍니다. 또한 수학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모두 담고자 한 노력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졌기를 희망합니다.
225쪽.

 

 

 

 

 

 

읽으며 문득 든 생각을 다시 갈무리해본다.

 

1. 왜 생명과학 / 생명공학에서는 수학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까.

  공학계열, 자연과학계열 중 가장 수학의 비중이 낮은 곳이 생명 분야이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미적분학(혹은 대학 수학, 혹은 공학 수학) 한 과목만 교양 수준으로 이수하면 되거나, 혹은 그마저도 선택과목으로 지정하여, 수업을 듣지 않아도 졸업에 지장이 없는 대학도 꽤 많이 있다. 
  '김재경 교수님처럼 유능한 분과 융합 연구를 하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에서 얼만큼 수학이 활용되는지 정도는 스스로 알아야 융합 연구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책 219쪽에서처럼, 문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해결에 '수학'이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만 수학과 융합 연구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생명과학에서만 수학이 언어로 활용될까? 

  그럴 리 없다. 모든 자연과학과, 더 나아가 사회과학에서도 비슷할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자연과학에서는 17세기부터 물리학에서, 사회과학에서는 경제학에서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21세기가 되어서야, 생명과학 "조차도" 수학이 언어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점차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인 것 아닐까?

 

 

3.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학회가 존재하고, 그 곳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교단에 머무르며, 내가 만난 연구회, 세미나, 모임만 다녀서 그럴까, 최신 연구 동향을 면밀하게 살피며 새로운 연구 소식을 나누고 또 밝혀진 연구 결과를 진행중인 지금의 연구에 새로 도입해보는 계기를 마주한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토록 연구와 실험에 매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의학도, 수학도, 기술과 과학도 점차 진보하고 있는 중임을 다시 한 번 느낀다.

 

 

4. 무척 큰 수학의 쓸모와 함께, 우리가 배우는 수학과의 격차가 참 크다.

  수학의 쓸모가 무척 크다는 것을 이번 책을 읽으며 참 많이 느꼈다. 하지만 이 쓸모를 실제 연구의 최전선에서 다챌롭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수준, 학부 수학 수준으로는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책의 저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변수 200개, 변수 1000개의 미분방정식을 이야기하였지만, 일반적인 컴퓨터로는 변수 1000개의 미분방정식에 한 실험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조차 버거울 텐데, 그 방정식을 모델링하는 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일까.

  책에서는 계속 '미적분의 쓸모', '수학의 쓸모'를 말하고 있지만, 수학을 전공하였던 사람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더라도 '쓸모를 위한 수학'과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수학' 사이의 괴리감은 더욱 더 크다. 19살이 되어 교육과정의 마지막 과정을 밟는 고3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에서조차, 가장 기초적인 미분방정식을 해결할 수 없는 '쉬운 수학'이기 때문이다.